[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을 앞둔 어느 날. 사석에서 만난 한 초선의원은 기대 보다는 걱정을 토로했다. 특권 내려놓기 바람이 불면서 19대부터 의원연금도 받기 어렵고 출판기념회도 금지해 운신의 폭이 좁아졌는데, 정개특위를 시작으로 정치개혁 바람이 거세지면 지역구 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원활동을 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환경이 됐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긴 과거 의정활동 여건과 비교하면 의원에게 부여된 특권이 많이 줄어든 것은 맞다. 음양으로 정치자금을 받는 것은 물론, 대놓고 줄을 서고 정부기관을 상대로 소위 '갑질'을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십 수 년에 걸쳐 특권을 내려놨는데, 또 다시 정개특위가 가동돼 몇 안되는 기득권마저 내려놓겠다고 하니 의원들의 속내는 쓰릴 게 분명하다.
다른 의원들도 겉으로는 "정치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덕담하지만 속내는 좌불안석이다. 한 여당 의원은 "워낙 민감한 이슈라 툭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고 서로 눈치만 보는 형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득권을 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다보니 의원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해석과 방법은 아전인수식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의원 300명에게 정치개혁 방법을 물어보면 답 역시 300가지가 나올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특히 올해 정개특위가 의원들을 더욱 좌불안석하게 만드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부담이다. 선거구 재획정은 기본이고 오픈프라이머리,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도 고려되고 있다.
이 제도가 궁극적으로 야기할 현상은 텃밭깨기다. 여야가 텃밭이라고 여겼던 지역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의미한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선거를 준비하는 당과 출마해야 하는 의원 입장에서는 당선을 위해 몇 배의 노력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텃밭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는 맞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상대당 텃밭에는 후보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호남과 대전 등에서 광역자치단체 후보를 내지 않았고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대구에서 기초단체장 공천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7ㆍ30 재보선에서는 29년만에 여당 후보가 야당 텃밭인 전남에서 당선됐으며 그보다 한달 앞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대구에서 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1위 후보를 위협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출마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거물정치인이 텃밭에서 출마하는 게 말이 되냐는 여론도 있지만, 그만큼 야당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이상 텃밭이 아니라는 말이다.
텃밭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원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특권이 사라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국회의원에게도 무한경쟁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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