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항래 은빛기획 대표 ‘조문보’ 발행…가수 신해철 등 기려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장례는 인간의 실존을 자각하는 근원적인 문화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장례문화는 조만간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노항래 협동조합 은빛기획 대표(53)는 9일 이같이 말하며 우리 장례문화에 격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조문보’(弔問報)라는 이름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인쇄물을 제작해준다.

노항래 은빛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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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보에는 고인의 약전(略傳)과 유족들의 이름과 나이, 가족사진이 실린다. 고인에 따라서는 그가 남긴 말과 글, 추모시와 추도사, 조문객들의 조사(弔詞)가 게재되기도 한다. 유족은 조문보를 통해 장례 일정을 알리고 문상객들에 대한 인사를 올린다.


노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문보라는 형식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사업에 나섰다. 노 대표는 “우리 장례문화에 내용이 없고 고인보다는 상주 중심으로 장례가 치러진다”며 “품위 있는 장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이 일을 시작한 취지를 들려줬다.

그는 “장례문화에 품격이 있을수록 사회에 품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며 “미국만 보더라도 유족과 지인들이 모여 영결식을 하고 고인을 추모한다”고 말했다.


은빛기획은 지난해 9월 이 사업을 시작해 가수 신해철, 경제학자 김기원, 언론인 성유보 등 고인 10여명의 조문보를 펴냈다.


노 대표는 연세대 정외과를 중퇴하고 국민참여당에서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한 뒤 2013년에 은빛기획을 설립해 이끌고 있다. 은빛기획은 ‘시민자서전’ 출간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시민자서전은 노년에 이른 세대가 기록을 통해 가족과 다음 세대와 사회에 자신의 삶과 시대를 들려주도록 한다는 뜻에서 시작했다. 시민자서전을 펴낸 인물이 타계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조문보가 제작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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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노 대표의 개인적 경험이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 대표는 청년기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교회 목사였던 부친과 멀어졌다. 부친은 그가 수감생활을 할 때 면회도 오지 않았다. 그는 부친에게 “구술하시면 자서전을 써드리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아버지는 진지하게 당신의 소년시절, 전쟁 때 겪은 일, 목회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일 등을 설명했고, 나를 기다렸다”고 들려줬다. 이 자서전은 부친이 타계하면서 마무리되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노 대표는 부친의 약전을 적어 조문객들에게 나눠줬다.


노 대표는 유족들이 고마움을 표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문보를 의뢰한 유족 중 한 명은 은빛기획의 페이스북에 “터져오르는 슬픔을 누르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은 조문객들이 조문보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다”며 “그 글과 사진을 보며 어머니를 추모하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올렸다. 그는 “그 속에서 어머니의 삶을 되새기게 됐고 또한 그 삶과 사랑을 마음 속에 되새기게 됐다”며 “따뜻한 글과 정성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가수 신해철 조문보

가수 신해철 조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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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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