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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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아버지다."


천종호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판사(49)는 '호통판사'로 불린다. 법정에서는 누구보다 매서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호통'은 남달랐다. 아버지와 같은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오는 '소년범'들을 따뜻한 시선을 담아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인터뷰 내내 그러한 모습이 반복됐다. 일반인의 시선과는 많이 달랐다.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인 시선은 냉랭하다. 청소년 범죄 관련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올라가면 날 선 댓글이 이어진다. '저런 것들은 사회에 나오지 못하게 싹을 뽑아야 돼.' 증오의 말들이 댓글을 채운다. 어려운 집안 형편, 가정폭력이 청소년 범죄를 부르는 배경이라는 시각도 있다.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천 부장판사는 사회적 냉대보다는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가난과 고통은 인간성을 마모시켜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고 꿈 꿀 자유마저 빼앗아 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년에 이르는 소년 재판의 경험이 그를 조금씩 변화시킨 원동력이다. 8000건이 넘는 소년재판을 담당했다. 그는 최근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2013년 책을 펴낸 이후 두 번째 책이다. 청소년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된 이들과의 만남, 솔직담백한 그의 소회가 담겨 있는 내용이다.

천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만난 이들 중에서는 결손가정이 많았고, 아버지 폭력을 경험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든든한 나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천 부장판사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기댈 곳이 없는 그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아이들은 주위 형이나 친구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다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 아이들은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존재를 기대하는 그들의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성폭력에 노출되고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성매매에 나서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사회가 두려운 사춘기에는 그들을 지켜주고 힘이 돼 줄 존재, 어떤 권위가 필요할 시기인데, 이 아이들은 그게 없는 거죠."


천 부장판사가 생각하는 그들을 위한 아버지는 '전사이자 현자'의 모습이다. 전사로서 사회에 나가 경쟁을 통해 얻은 물질을 가족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동시에 현자로서 삶의 방향을 알아주고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란 이름의 무게가 무거워 보이지만 그는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방황의 무게에 짓눌려 법정에 선 아이들에게 두 가지 모두 필요해서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천 판사는 그 역할을 대신해왔다. 법정이 떠나가라 엄하게 호통을 치는가 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를 차근차근 들어주고 타이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를 되뇌는 사연 딱한 아이에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 그다.


천 판사는 법정을 '재범을 막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가족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재범을 막는 최후의 장소라고 생각하면 법정은 너무도 소중한 곳"이라며 "아이들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에서 아이들이나 부모들에게 "잘못했습니다" "미안하다" "나는 할 수 있다" 등을 10번 외치게 하는 걸로 유명하다. 아이들을 뉘우치게 하는 동시에 가족들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기 위함이다. '미안하다'는 외침은 계속된 범죄로 지친 부모들도, 학대와 무관심으로 법정에선 아이들도 위로하기도 한다. 유난히 그의 법정이 눈물바다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부모의 보호능력이 떨어지는 소년범들의 교정시설인 '사법형 그룹홈(공동생활가정)' 활성화를 위해 뛰고 있다. 사법형 그룹홈을 거친 아이들의 재범률이 떨어지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동ㆍ청소년 보호법에서 정한 보호시설로 인정받지 못해 지원이 열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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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로 불리는 그는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지 않는 사회에 호통을 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꿈을 잃고 좌절하며 죽어가고 있고, 그런 아이들이 6년 전에 비해 더 늘어나고 있는데 국가와 사회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


인간 사회를 간벌(間伐)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어울려 살아가야 우리 아이들도 행복합니다. 패자란 낙인을 찍어놓고 부활을 말할 게 아니라 역전을 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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