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둘째 부인 신덕왕후 능 '정릉' 재실 복원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 신덕왕후 능인 정릉(貞陵)의 재실(齋室,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 3년에 걸쳐 복원이 완료됐다. 복원된 재실은 25일 오전 10시 일반에 공개된다.
정릉은 조선 제1대 왕 태조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으로, 원래의 자리는 당시 도성 내였던 서울 중구 정동이었으며 현재보다 크고 화려했다. 하지만 태조의 정비(正妃)였던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1400년)하고 태조가 승하(1408년)하면서 1409년 현재 자리인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이장됐고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이후 정릉은 폐허처럼 방치됐다가 1669년(현종 10)에 정비, 1900년에 재실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초석만 남기고 1960년대 멸실됐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능제복원 차원에서 2012년 재실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를 통해 1788년에 발간된 춘관통고(春官通考)의 기록과 일치하는 6칸 규모의 재실터와 건물 배치 등 양호한 형태의 유구를 확인했다. 이후 발굴조사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3년간 정릉 재실의 본채, 제기고, 행랑, 협문(3개소)과 담장 등을 관계 전문가 자문,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총 사업비 15억원을 투입해 복원했다.
정릉(貞陵)의 주인공인 신덕왕후는 고려 시대 명문가였던 곡산 강씨 강윤성의 딸로 태어나, 당시의 풍습에 따라 이성계의 경처(京妻, 두 번째 부인)가 됐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2남(무안대군 방번, 의안대군 방석) 1녀(경순공주)를 낳았으며,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됐다. 태조는 신덕왕후를 극진히 사랑하였다고 하며, 정비(正妃)인 신의왕후 한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여섯 아들 대신에 신덕왕후의 둘째 아들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1392년)시키기도 했다. 신덕왕후는 태조보다 먼저 1396년(태조 5)에 승하했다.
태조는 신덕왕후 사후, 도성 안에 능 자리를 선정해 왕후릉을 크고 화려하게 조성했고, 그 옆에 태조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 생전에 미리 만들어 놓는 묫자리)도 마련했다.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흥천사)을 세워, 이 원찰에서 정릉에 제를 올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아침 수라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자의 난 이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1400년)하고 태조가 승하(1408년)하자 본격적인 정릉의 격하가 시작됐다.
먼저 태종은 정릉이 도성 안에 있다는 이유로 현재의 위치에 능을 이장했고, 중국 사신들의 숙소인 태평관을 새로 짓기 위해 정릉의 정자각을 뜯어 건축목재로 사용했다. 또한,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다리 복구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덕왕후를 부묘(?廟, 삼년상이 지난 뒤에 신주를 종묘에 모심)에서 제외시켜 왕후의 지위를 격하시켰다. 이후 신덕왕후의 부묘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되었다가, 현종 대에 송시열 등의 건의로 정릉을 정비하고 신덕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기에 이른다. 대한제국 선포 후인 1899년에는 신덕고황후로 추존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