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세월'이 치유되는 시간, 아직 멀었습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다섯달간 열린 세월호 공판 재구성
4.16 그 날이 다신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85년 日 사상 최악의 항공기 추락사고
520명 사망 유족의 7년간 마음 보듬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저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것은 (울먹이며) 정말 어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저희는 수학여행을 가다가 단순히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사고 후 대처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죽은 건데, 이런 것을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화장실에 갇혀 있던 여자애가 못 나왔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대피 방송만 제대로, 방송만 정말 제대로 했다면..."
지난해 7월29일 세월호 선원 재판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증언이 시작됐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은 내용이 다뤄졌지만, 학생들이 힘겹게 울먹이며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왜 선원들은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한 것인지? 왜 정부 여당은 세월호를 '교통사고'로 정의한 것인지? 더 나아가 도대체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나야만 했는지? 사고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넘치고, 상처는 깊다.
◆ 세월호의 사실을 재구성하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신간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속한 르포르타주 작가 오준호(40) 씨가 5개월간에 걸쳐 33차례 이뤄진 세월호 공판을 방청하면서 쓴 세월호 재판의 법정 기록물이다. 저자는 "그 날 그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을 찾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왜 재판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리 한계가 있다 해도 이곳이 진실 규명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수많은 증인과 증거가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그 날의 진실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침몰-구조-출항-선원'으로 구성된 각 장은 생존자, 선원, 해경, 어민 등 다양한 증언과 함께 그 날의 참사를 재구성한다. 재판부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당시 항해사와 조타수의 잘못된 조치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승선 당시 안전교육 미비, 밀폐되지 않은 화물 출입구, 최대 적재량을 초과한 화물 등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선원, 인천항 운항 관리실 직원 모두 '이렇게 하면 배와 승객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행과 무책임, 이해관계에 얽혀 잘못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저자가 내린 경고는 섬뜩하고 서늘하다. 산업재해로 인해 중상자가 1명 발생하면 그 전에 이미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 수는 300명에 이른다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우리가 지금 세월호가 던지는 메시지를 간과한다면, "세월호 참사 역시 다음에 닥칠 그 무엇의 징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미 사고가 벌어진 후에는 '나와 내 가족만은'하는 바람마저 사치가 될 수 있다.
◆ 대형참사 유족의 슬픔에 대한 기록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일본에서는 1985년 항공사고 사상 최악의 참사가 있었다. 1985년 8월12일 JAL(일본항공) 점보기가 군마 현 우에노무라 산중의 오스타카 산등성이에 추락해 520명이 사망했다. 정신병리학자이며 작가인 노다 마사아키(71) 씨는 당시 가족을 상실한 유족들을 사고 후 7년 동안 꾸준히 취재한 결과물로 이 책을 내놓았다. 쇼크-부정-분노-우울-용서와 수용-재출발이라는 슬픔의 시간학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유족들의 상황을 정리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대형참사를 겪은 유족들은 가장 처음으로 시신을 되찾는 투쟁에 나선다. 평소에 죽은 벌레도 못 만지던 심약한 40대 주부는 갈기갈기 찢어진 남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일본 행정당국과 맞서 싸우기까지 한다. 가까운 이들의 돌연한 죽음은 유족들에게 '나는 무엇을 해줬나'하는 죄의식을 남긴다. '시신 찾기 과정'은 죄의식을 그나마 해소하고, 망자를 떠나보내는 상(喪)의 과정을 치르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오히려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유족들이 두고두고 마음의 병에 시달린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유족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며,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일관했는지 짚어낸다. 유족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태 해결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핑계삼아 장례 절차를 진행해버리고, 섣불리 보상이나 배상 문제를 언급해 유족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남편분의 취미는?"이라며 유족의 얼굴을 클로즈업해대는 언론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또 가해자들은 잇따른 대형 참사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 대책 매뉴얼을 꾸준히 개정해 가는데, 피해자들은 한 번의 사고로 영원히 사라져 가는 현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달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아직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밝히지 못한 진실이 남아있고, 유족들의 슬픈 마음도 미처 다 어루만지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9일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노다 마사아키 작가는 지난해 9월 직접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광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 반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이 정도로 큰 제단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시민사회에는 일본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건강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들의 민주적 연대와 유족들의 슬픔을 충분히 발현시키는 사회만이 미래 사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 오준호 / 미지북스 / 1만5000원)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 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펜타그램 /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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