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분의 1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나노멤브레인을 통해 암전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사진제공=미래부]

▲나노멤브레인을 통해 암전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사진제공=미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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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분의 1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컴퓨터와 결합해 '웨어러블' 활용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작고 작은 세계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10만배 작은 세계. 현미경 중에서도 전자 현미경으로만 관찰되는 세상입니다. 바로 나노(nano) 세상입니다.


나노라는 말은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따왔습니다. 나노초(ns)는 10억분의 1초, 정말 찰나의 순간이죠. 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m를 뜻합니다.

1nm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크기입니다. 이 작고 작은 세상인 '나노'는 반도체 등에 국한돼 연구돼 왔습니다. 최근 들어 전자정보통신은 물론 기계와 화학 등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나노세상에서 앞으로 미래의 세상을 바꿀 선물들이 나올 예정입니다.


◆탄소 숲으로의 초대=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만큼 초록이 아주 싱그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초록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숲을 연상시켰습니다.

미시 세계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감탄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것보다 작고 작은 것에서 독특한 매력이 뿜어져 나오죠. 최근 영국 공학·물리과학 연구위원회(Engineering and Physical Sciences Research Council)가 정기 과학 사진대회를 통해 대상을 선정했습니다.

▲마치 초록숲으로 보이는 탄소나노튜브의 전자현미경 사진.[사진제공=EPSRC]

▲마치 초록숲으로 보이는 탄소나노튜브의 전자현미경 사진.[사진제공=EPS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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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오늘의 사진'에 올린 해외과학매체인 뉴사이언티스트는 '다이아몬드 코팅된 탄소의 숲'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이 사진은 최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탄소 나노튜브로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5만배 작습니다. 전자현미경이 아니고서는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입니다.


폴 메이 브리스톨대학 교수가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것인데요. 탄소 나노튜브는 차세대 전자공학을 이끌 주인공으로 대접받고 있죠. 강하면서도 유연하기 때문에 기능 컴퓨터에 많이 이용됩니다. 이뿐 아닙니다. 웨어러블(wearable), 즉 입는 컴퓨터는 물론 바이오 분야와 결합되면서 다양한 기능성 제품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친환경 유리 제작= 유리에 나노돌기를 간단하고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기능성 유리를 제작하는 방법도 나왔습니다. 국내 연구팀이 개발했는데 자연의 연꽃잎이나 나방 눈의 나노돌기를 기능성 유리에 적용하는 것이죠. 수분을 튕겨 내거나 어두운 곳에서 시각을 확보해주는 김 서림 방지 유리나 안경, 후방 카메라 등 다양한 기능성 유리에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문명운 박사 연구팀이 내놓았는데요. 유리에 나노돌기 형상을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제조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연꽃잎이나 소금쟁이의 발, 건조한 사막에서 물을 포집해 수분을 섭취하는 나미브 딱정벌레, 어두운 밤에 적은 빛으로 사물을 구별 할 수 있는 나방 눈 등의 공통점은 표면에 나노 돌기들이 존재하죠. 이 자연적 현상을 나노기술을 통해 구현해 낸 것입니다.


나노돌기 표면을 활용하면 김이 서리지 않는 안경이나 물이 묻지 않는 렌즈 등의 유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죠. 강한 안개나 어두운 곳에서도 앞이 잘 보이는 자동차 유리 제작도 가능합니다. 자동차용 백미러에 나노돌기를 적용하면 비오는 날에 거울을 닦을 필요가 없고 야간 운전을 할 Ep 헤드라이트 반사불빛에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게 됩니다.


사실 나노돌기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됐습니다. 공정이 복잡하고 내구성이 낮고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는 등의 단점이 있었죠. 유리 모양을 만들고 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첨가하는 알칼리 금속들이 나노돌기가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연구팀은 유리 위에 투명한 막(SiO2)을 미리 코팅해 플라즈마로 표면을 부식시키는 공정 도중에 투명 막 위에 나노 점들이 배열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렇게 배열된 점들이 기존 표면과 부식속도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유리 표면에 나노구조를 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노돌기를 응용한 유리를 만들어낸 문명운 박사는 "내구성이 높은 기능성 유리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라며 "기능성 유리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만큼 앞으로 다양한 곳에 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암전이 규명하는 나노= 주변에 암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계신지요? 아직도 극복이 되지 않는 질병 중의 하나가 바로 암입니다. 특히 암전이는 심각합니다. 암이 재발하면 대부분 극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이 앞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암전이 환경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나노멤브레인이 개발됐기 때문인데요. 암이 어떻게 전이되고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전이 암 치료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사망원인 중 하나입니다. 암 환자는 지금도 늘고 있죠. 암으로 인한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단순한 종양의 성장보다는 90%가 재발 또는 전이에 의해 일어납니다. 실제 암 환자의 생존율은 66.3%인데 암전이 환자의 생존율은 18.7%에 불과했습니다.


국내 연구팀이 생체 속 암전이 환경을 그대로 구현하는데 필요한 다공성 나노멤브레인을 개발해 암전이 과정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조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공성 나노멤브레인(Nanomembrane)이란 특정물질을 선택적으로 투과시키는 수많은 구멍을 가진 수십에서 수백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두께의 막을 말합니다.


암전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암전이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기존의 세포 공배양용 멤브레인은 두껍고(10마이크로미터) 기공의 수가 적어 생체 속 환경을 그대로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연구팀은 생체 친화적인 고분지를 주재료로 두께가 얇으면서도(500나노미터) 세포 간 신호물질이 잘 통과되도록 기공이 많은 나노멤브레인을 만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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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매의 종류와 용액의 농도 조절을 통해 기공의 크기와 멤브레인의 두께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 응용가치가 더욱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연구팀이 개발한 것입니다. 차국헌 서울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암전이 현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뿐 아니라 예방과 치료를 위해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의 세계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2015년 봄이 찾아오는 이 시간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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