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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은 변신중…옛것과 새것의 불편한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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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매체등 다방면으로 각광받으며 부상하고 있는 경리단길 초입의 모습. 이곳에서 오래 거주해온 주민들은 경리단길의 유명세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생활환경만 더 나빠졌다"며 울상이다. 급속하게 사람들이 몰리고 있지만 가게 매출이 늘어나기는 커녕 장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지만, 정장 주민들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최근 방송매체등 다방면으로 각광받으며 부상하고 있는 경리단길 초입의 모습. 이곳에서 오래 거주해온 주민들은 경리단길의 유명세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생활환경만 더 나빠졌다"며 울상이다. 급속하게 사람들이 몰리고 있지만 가게 매출이 늘어나기는 커녕 장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지만, 정장 주민들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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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미혼 직장인 김가영(34·가명)씨는 주말마다 이태원 2동에 위치한 단골 가게를 즐겨 찾았다. 경리단길로 잘 알려진 그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골목 어귀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이색 맛집이 즐비, 혼자 조용하게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여가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 사람들로 북적이는 홍대, 대학로와 달리 적당히 예스럽고 아늑한 분위기에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는 A씨. 그러나 그는 최근 들어 또 다른 아지트를 찾고 있다고 한다. A씨는 "SNS상에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지 방문객이 날로 느는 것 같다"며 "특유의 차분한 느낌을 잃어버린 것 같아 예전만큼 애착이 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500m 남짓한 거리 하나에 20~30대 젊은 층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 지하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쭉 내려오면 시작되는 골목길 하나가 바로 그곳이다.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팔짱을 낀 연인을 비롯해 왁자지껄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는 동성의 무리들이 인도를 점령하며 행진하는 곳이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각종 맛집 정보를 프린트해 손에 쥔 사람과 스마트폰 3D 지도 검색으로 맛집 위치를 찾는 사람 등 흡사 인터넷시대 신 풍속도를 오프라인에서 보는 심경이라는 게 그곳을 가본 사람의 증언이다.
경리단길 뒷길의 장진우 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가게들을 보고 있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경리단길 뒷길의 장진우 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가게들을 보고 있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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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특수 업고 신흥 명소로…제2의 가로수길이라 불리며 1~2년새 '승승장구'

경리단길은 2012년 국군재정관리단으로 통합된 육군중앙경리단이 있던 것에서 유래됐다. 인근에 위치한 미군부대 영향으로 일찌감치 외국인들의 주거단지로 자리 잡은 그곳은 이들의 취향에 맞는 식당과 술집들이 늘어서며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3월 이후 눈에 띄게 붐을 탔다. 연예인 기획사가 들어섰다는 소문이 나고 실제로 이곳을 중심으로 연예인 목격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오면서 하루 아침에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곳 거리를 방문한 이들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후기도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태원이 명동과 더불어 주요 상권으로 부상한 것도 경리단길의 유명세를 재촉했다. 방송인 홍석천 등은 이태원 주요 거리에 맛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이태원 상권 부상에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이후 장동건, 공효진, 조인성 등이 이태원 소재 빌딩을 매입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외 팬들은 물론 투자가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특히 용산구청이 지난해 말 이태원 일대의 명소를 담은 지도를 제작, 지역 관광안내소를 중심으로 배포에 나서면서 요유커 등 외국인 대상 관광명소로도 떠오르는 추세다.

경리단길 초입 카페와 추러스르 맛보는 시민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경리단길 초입 카페와 추러스르 맛보는 시민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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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인구 늘자 상가 임대료 껑충…2~3배는 기본, 평당 권리금 1억 달하기도

경리단길 초입부터 100m 남짓 거리가 일명 투자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그곳에서 남산 하얏트 호텔 앞까지 쭉 이어진 언덕길이 방문객들의 주요 도보 코스인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람들로 인도가 꽉 메워질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줄 지어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이태원2동에서 55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김모씨(65)씨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땐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다"며 "청소년부터 대학생, 직장인 등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경리단길이 유명해진 뒤 건물을 팔고 동네를 떠난 주민들도 늘었다. 상점을 새로 개업하려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20억~30억원대 건물이 50억원대로 뛰는 등 갑작스레 높은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되면서다. 목 좋은 도로변서 10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주모(48)씨는 "도로를 낀 건물은 대부분 1~2년새 건물주가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며 "지금까지 매매가가 오를 대로 올라 정점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있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더 싼 임대료를 찾아 중심 골목에서 더 떨어진 골목과 주택가로 자리를 옮겼다.

매매가가 오르면서 당연한 수순처럼 임대료도 상승했다. 평당(전용면적 33㎡ 기준) 권리금이 2~3년전 1500만~2000만원대에서 현재는 6000만~7000만원대로, 월세 또한 수년전 100만원에서 현재 150만원선으로 올랐다. 삼거리를 지나 좀 외진 곳에 위치한 상가는 보증금 1000만원에 평균 임대료가 70만~80만원 정도다. 이는 최근 5년 기준으로 20~30% 오른 수치다.

남산에서 바라본 경리단길.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남산에서 바라본 경리단길.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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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 바뀌며 진통도…업종 변경하며 살아남기 '안간힘'

도로 초입에 위치한 제일시장은 6.25 전쟁 이후부터 명맥을 이어온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정육점을 비롯해 채소·야채 가게 등 보통의 시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 역시 경리단길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기에 나섰다.

인도를 향해있는 한 소세지 가게는 외국인 점주가 운영하는 탓에 언뜻 보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긴다. 하지만 이는 시장 쪽으로 문을 낸 정육점 주인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신규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고심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정육점 주인 이모씨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기서 버티기 어렵다"면서 "유동인구만 늘었지 가게 매출이 크게 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삼거리 부근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채모씨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리단길의 특성상 주민 또는 오래된 단골 위주로 운영되는 곳이 많이 신규 손님들이 매출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 채씨는 "돈 없는 학생들이 주로 사먹는 것은 2000원짜리 츄로스나 치즈 호떡 정도"라며 "그나마 커피숍 위주로 수요가 있지 우리처럼 원래 장사하던 사람들한테는 별 의미가 없는 손님들"이라고 말했다.

경리단길 중턱에 위치한 제일시장의 모습.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경리단길 중턱에 위치한 제일시장의 모습.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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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프랜차이즈 들어서며 투자 열기 이어져…기존 상인들은 쫓겨날 위기도

경리단길 투자 붐이 이어지면서 파스쿠찌를 비롯해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속속 들어섰다. 모두 운영된 지 2년이 채 안된 곳이다. 익명을 요구한 동네 주민은 한 프랜차이즈 점포에 대해 "원래 가맹점주가 운영하던 곳인데 장사가 잘되자 회사측에서 직영점으로 바꿨다는 소문이 있다"며 "결국 우리같이 영세한 자영업자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탤런트 길용우가 지난해 10월 매입한 건물의 상인들의 상황은 더 나빴다. 길씨가 음력 설을 앞둔 5일 전 퇴거명령이 담긴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갈등은 촉발됐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길씨는 대지면적 413㎡ 규모이 이 건물(지하 1층~지상 2층)을 62억원대에 매입했으며 재개발을 이유로 총 8개 상점에 올해 9월전까지 퇴거를 요청했다. 이 건물 1층엔 곱창집과 미용실, 수입과자, 의류, 보석가게 등이 입점해 있는데 현재까지 운영기간은 평균 2~3년이다.

세입자 중 가장 빨리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팥죽집 사장은 연신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사장은 "가게를 오픈할 때 돈이 없어 인테리어 비용도 겨우 1000만원 들여서 시작했다"며 "겨울 비수기 지나 이제 장사 좀 제대로 해보려니까 나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많아졌다고 장사가 더 잘되는 건 아니지만 임대료를 올려줄 의향도 있다"면서 "가게 차릴 곳도 마땅히 못찾는 상황에서 이달 중 무턱대고 나가라고 하니까 더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탤런트 길용우가 매입한 상가의 모습.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탤런트 길용우가 매입한 상가의 모습.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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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취 사라지고 뜨내기 손님만 늘어…"1~2년안에 거품 꺼질것" 씁쓸한 전망

"건물 주인은 물론 손님도 다 바뀌었죠. 여기서 살던 외국인들도 월세 오르니 다른 곳으로 많이들 이사도 가고..." 작고 낡은 외관의 채소가게 여주인은 어렵사리 말을 이어갔다. 남산까지 슬슬 걸어오르던 옛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 젊은이들이 쏟아내는 소음과 무심결에 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 이렇게 스치기만 하는 뜨내기 손님들로 인해 점점 더 특색 없고 시끄럽기만 한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도로 인근에만 10곳에 달하는 부동산 업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주민들의 원성에 시달린 탓이다. 상인들은 업자들이 건물주와 가격 벨트를 형성해 임차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고 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시점에 건물을 팔려는 건물주와 중간 마진을 차지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힘없는 세입자만 나가떨어지는 구조라는 것. 부동산 시세가 안정되지 않는 한 경리단길의 미래도 없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주민 정모씨는 "한국이 왜 일본처럼 몇 십 년 전통의 맛집들이 없는 줄 아냐"며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권리금 받고 되팔기를 반복하는 투자 관행 탓"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가로수길도 그렇지만 진짜 관광명소로 거듭되려면 역사와 문화가 유지돼야 하는데 한 건물 걸러 바람잘날 없이 변하는 현재의 모습은 수년전의 가로수길을 보는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평일 저녁, 손님이 뜸한 가운데 식당 주인이 TV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평일 저녁, 손님이 뜸한 가운데 식당 주인이 TV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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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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