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2월12일'. 현대중공업 사사(社史)에 굴욕적인 날로 기억될 것 같다.


'3조원대 영업손실, 통상임금 패소'라는 대형 악재를 하루 만에 다 겪어야 했다. 오후 2시 통상임금 1심 판결, 2시간 후 2014년 실적 발표가 나오자 현대중공업 서울 사옥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글로벌 조선업계 1위의 자존심이 무너진 탓이다.

◆'3조2495억원'=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입은 영업손실이다. 몇 년간의 누적적자가 아니다. "이 정도 적자규모면 웬만한 기업 같았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20년 넘게 조선업 1위 자리를 지켜온 현대중공업이기에 버텨냈다" 등 업계 일각의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한가로운 소리다. 3조원대의 영업손실을 그냥 지나칠 순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3조2495억원을 메우려면 한 척에 2000억원 정도인 세계 최대 규모 1만9000TEU 컨테이너선을 16척이나 수주해야 한다. 손실을 회복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국내 제조업 역사를 통틀어서도 연간 영업손실이 3조원을 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2월 결산 상장사 중 3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기업은 2011년 공기업인 한국전력(영업손실 3조2900억원)뿐이다. 한전을 제외할 경우 국내 민간 기업 중 최대 적자 기록을 세운 셈이다.


◆'4200억원'= 현대중공업이 앞으로 근로자들에게 갚아야 할 돈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울산지법 제4민사부는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은 상여금 800%(명절 상여금 100% 포함)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이를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날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현대중공업은 4200억원(3년치 소급분)을 더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노조는 일단 1심 판결에 수긍했지만 당초 4년6개월치를 아직 고집하고 있어 향후 그 부담은 6200억원으로 늘어난다.


현대중공업의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몽준 대주주의 측근인 '최길선ㆍ권오갑' 투톱 체제가 들어선 후 인력 구조조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물론 3조원대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사정상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직원들이 최고 경영진의 방침에 동감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적자의 원인을 직원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장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하위직 화이트칼라들마저 회사 방침에 반기를 든 모습이다.


올해 조선 시황 전망이 어두운 것 역시 현대중공업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연초부터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으로 부터 수주 계약 소식이 연일 전해져오고 있는데, 현대중공업은 조용하다. 지난해 수주 목표 미달성에 이어 올해도 목표치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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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측은 "경영체질 개선과 원가절감 노력, 수익성 위주의 선별적인 수주 정책 등을 지속적으로 펼쳐 향후 더 나은 실적을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통상임금 판결도 아쉽고 유감스러운 만큼 판결내용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2일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 결과는 조선업계의 가이드 라인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1심 판결 결과 대로 확정될 경우 빅3 조선업체의 추가 인건비 부담액은 700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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