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과거사 역주행', 사법정의 외면 논란
민주화보상법 사건 '국가배상청구권' 제한…헌재 위헌법률심판 앞두고 서둘러 판단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대법원이 민주화운동보상법 관련 사건에 대한 판결로 '과거사 역주행'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하급심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법률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서둘러 판단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2일 '문인간첩단' 사건 재심에 무죄를 선고받은 김우종 전 경희대 국문과 교수 등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과 관련 있는 사안이다. 18조 2항은 '보상금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전 교수와 소설가 이호철씨 등은 1974년 유신헌법 반대 성명을 발표한 뒤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76년 7월 유죄(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고문·가혹행위에 따른 거짓자백 때문에 '간첩누명'을 쓴 것으로 드러났고, 2011년 12월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김 전 교수는 당시 사건 여파로 일자리를 잃었고,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는 등 극심한 피해를 당했다. 이씨도 소설 연재와 방송출연이 중단되는 등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당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위위는 2005년과 2008년 김 전 교수에게 생활지원금으로 모두 730여만원을 지급했고, 이씨에게는 2008년 135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씨와 김 전 교수는 생활지원금을 받을 당시 "보상금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해 화해계약 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기재된 청구서에 서명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 조항을 근거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부장판사 오재성)는 과거사 관련 다른 사건에서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은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인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국가배상 청구권을 제한한 것으로 의심된다"면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헌재의 위헌 여부 결정에 대한 판단을 기다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문인간첩단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생활지원금 지급으로) 정신적 손해 부분까지 권리행사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민주화보상법 입법취지에도 반할 뿐 아니라 헌법 정신에 반하는 해석이 될 여지가 있다"고 판시한 것과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대법원이 '역주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대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가능기간을 전보다 단축하고, 유신시절 긴급조치를 적용한 수사·재판은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도 형식론적인 법해석으로 사법정의와 인권의 최후보루 역할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선 대법원 내부에서도 상당수의 대법관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상훈, 김용덕, 고영한, 김창석, 김소영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무죄판결이 확정된 사정을 전혀 도외시하고 보상금 지급결정에 동의했다는 사정만으로 더 이상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공평과 정의의 관념에 배치됨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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