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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제보자'의 모든 것…"수위조절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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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사건 다룬 영화 "참 언론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임순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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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배아줄기세포, 수정란, 성체줄기세포, 테라토마(양성종양), 스키드 마우스(면역력을 없앤 실험용 쥐) 등 어려운 생명공학 용어들이 임순례(54) 감독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10년 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논문들과 씨름했던 결과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초점을 맞춘 것은 '줄기 세포가 있냐 없냐'의 여부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등 돌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한 언론인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영화는 주력한다. 임 감독은 이를 가리켜 '참언론'이라고 불렀다.

영화 '제보자'는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쪽으로 튀어' 등 그동안 임순례 감독이 보여준 영화들과는 결이 비슷한 듯 다르다. 촘촘하게, 그리고 뚝심있게 감정을 쌓아나갔던 전작들과 달리 '제보자'는 핵심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쉽게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세심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은 여전하다. '국익이 우선이냐, 진실이 우선이냐'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임 감독은 "진실을 용기있게 세상에 알려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결국 진실이 국익이라는 뜻이다. '제보자'의 개봉을 앞두고 임순례 감독을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제목이 '제보자'다. 제보자란 이름이 처음에는 가제라고 들었는데, 아예 개봉제목으로 올린 이유는?

"이 프로젝트 기획단계에서부터 제목이 제보자였다. 영화가 한통의 제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영화 내용과 연결돼서 표현되진 않았지만, 극중 심민호(유연석)는 내부제보자이고, 윤민철(박해일)은 그걸 받아서 국민에게 진실을 제보하는 또 다른 제보자란 뜻도 된다. 나도 '자'자 들어가는 제목 별로 안좋아한다(웃음)."

-영화는 윤민철 피디, 이장환 박사(이경영), 제보자 심민호가 중심축을 이루는데, 무게중심은 윤민철 피디에 있다. 언론에 초점을 맞춘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할 수도 있고, 세 사람을 똑같은 비중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장환 박사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사이더' 같은 영화는 제보자가 중심이 되어서 심리적인 갈등이나 고뇌를 그리고 있는데, 나는 제보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인의 집념에 관심이 갔다. 요즘 한국의 언론 현실이 너무 처참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제보자' 중에서

'제보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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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 사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이야기다. 오히려 잘못 건드리면 영화가 더 밋밋할 수도 있었을 거 같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이 사안 자체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영화로 만들면 시끄러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제작자가 줄기세포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니라 언론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설득을 했다. 영화적으로 만들기 힘든 영화였고, 쉽지 않은 영화였다. 그러면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이 사건이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비리의 집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규모의 사기가 진행된 거다. 제보자에 대해 고민해봤다. 그 바닥에서 생매장당할 위험이 있을 텐데, 어려운 여건에서도 용기있게 세상에 알린 게 제보자다. 영화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제보자가 치른 희생이나 용기에 비하면 가볍고 적은 것이다."

-체세포, 배아줄기세포 등 생명공학 전문용어가 어쩔 수 없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전달할까 하는 고민도 했을 것 같다.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면 관객들이 힘들어할 거 같고, 그렇다고 생명공학을 소재로 다룬 영화에서 안할 수도 없었다. 굉장히 쉽게 풀어가는 식으로 했는데도 어렵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설사 그런 용어들을 몰라도 크게 상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만들려고 했다."

-실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치밀하게 했다고 들었는데, 영화에서 어디까지 담을 것인지, 그 수위 조절은 어떻게 했나?

"당시 사건의 취재 파일을 보면 굉장히 방대하고, 차용할 게 많았다. 이걸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였다. 오히려 실제 사건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부분도 많아서, 그걸 영화에다 그대로 쓰면 관객들이 '에이, 현실은 저렇지 않았을 거야'라고 느낄 부분였다. '제보자'는 영화가 실제 사건보다 수위가 약한 케이스다."

-윤민철(박해일) 피디가 방송을 틀기 위해 사장을 설득할 때 방송윤리강령을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시사회때 이 부분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렸다.

"처음에는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다. 사장이 마음을 돌리는 계기가 약하니까, 거기에 뭐를 더 넣을지 고민하다가 그 장면을 만들었다. 그 대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처음에는 이게 신파같고 오글거리고 그랬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첫 설정에는 방송사 사장도 언론인 출신이어서, 윤민철 피디가 차 밖에서 방송윤리강령을 외치면, 사장도 같이 중얼거리는 모습을 교차편집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붙여놓고 보니까 너무 오글거리더라(웃음). 그래서 사장이 따라하는 부분을 빼버렸다. 이 대목은 결국은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가 이장환 박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건가?

"학자라면 진실에 기반한 연구를 해야 하는데, 거짓을 기반으로 했다. 개인의 잘못도 있지만 한국사회의 부조리함도 쌓여있다. 그 분이 그 자리까지 오른 것에는,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던 정부, 전설 만들기에 나섰던 언론, 동료 과학자들의 비겁함,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인물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본인 스스로가 거기에 맞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 거다. 그래서 사기꾼, 악인 이렇게 묘사하기 보다는 한국사회의 비뚤어진 욕망이 투영된, 진실하지 않은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만약에 나에게 모든 기대와 재원이 쏟아지고, 내가 하는 것에 다 속아 넘어가주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무도 나를 검증하지 않으려 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열광하면 거기에서 똑바로 서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제보자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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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과 이경영을 캐스팅했다.

"윤민철 피디 역할에 박해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집요함과 집중력이 있는 배우다. 극 중에서 이장환 박사에 맞서는 인물로, 관객들이 지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때 만났을 때는 박해일의 나이가 25살이었고, 영화도 처음이고 해서 애기처럼 보였다. 근데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경력도 쌓고 스타가 됐으며, 많은 작품을 하면서 엄청 성숙했다. 나보다 10살이 넘게 어리지만 대화가 통하고 친구같이 편하다. 이경영은 실제 논란이 된 인물을 연기한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지만, 워낙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못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 인물과 비슷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부각해서 연기하더라."

-영화에는 두 가지 언론의 모습이 나온다.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과 확인되지 않은 실체를 맹목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의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결국은 참언론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데, 감독님의 바람이 녹아 들어간 거 같다.

"최근에 그런 문제의식이 많이 생겼다. 언론탄압이 극심해짐과 동시에 또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와 알고 있는 팩트와 다른 것들을 보도하고 있고. 언론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주범이 됐다. 한국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도가니'와 '변호인'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특히 한국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제보자'가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우리는 참여연대와 증인제보자보호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데, 그게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 공익제보자, 내부고발자들은 사실은 부조리나 불합리를 개선하려고 제보를 하는 건데, 오히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해고를 당하는 등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통해서 이런 제보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좋겠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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