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라고 김광석은 새벽닭처럼 '일어나'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개념을 얽어매놨다.
고뇌의 뜨거운 중심에 있었던 나이에 이별을 선택한 그에게, 더 늙어진 우리가 철학적으로 기댈 언덕을 찾으려는 심산은 아니다. 그가 생각했던 가벼움이란 무엇인가를 문득 물어보는 것 뿐이다.
생이 이승으로만 끝나지 않고 복잡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생각해낸 사람은 부처이다. 그것 때문에 가벼운 생이 무척 무거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나기 이전은 모르겠으나 죽은 뒤엔 반드시 또다른 어딘가에 간다는 생각 또한 비슷하게 우리를, 가볍지 않게 한다.
담백하고 깔끔하게 이승의 삶이 무의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괜히 결리게 하고 켕기게 하고 또 불안하게도 한다.
이렇게 선언하면 더 참혹한가. 우리의 생은 살아있는 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가다가 코끼리에 밟혀죽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 기억되지도 않으며 기억할 가치도 없으며 그것은 많은 기억되지 않는 것들 사이에 파묻혀 스스로 완전한 무덤이 된다는 것.
그래서, 생의 주위에 아우라를 치고 그 너머에 무슨 굉장한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미는 자들이 모두 사기꾼에 가깝다고 말하는 건, 너무 슬프고 허탈한 일인가.
가볍게 산다는 것이, 그 자유의 의미가 무책임을 의미한다고 김광석은 생각했을까. 그랬다면 그도 어렸던 셈이다. 전깃줄에 발이 묶인 새 한 마리가 날아가려고 뱅뱅 돌다 결국 자기의 발목까지 줄이 좁혀지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죽는 이미지를, 그는 가벼운 삶의 진실 혹은 정체로 파악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생에서 읽어내고 가야할 진상은, 저 엄혹한 가벼움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너무 사치스러운가. 부박한가.
나는 무거움과 가벼움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가벼움을 택하겠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무의미에 가까워지는 저 소멸 혹은 소실에서 생의 간절한 빛과 기억을 발견하고 싶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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