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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술타령(94)

최종수정 2020.02.12 10:24 기사입력 2014.07.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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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막걸리를 국민주라고 말했지만, 이젠 소주를 국민주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소주를 즐기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뜻밖에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은 소주가 일제 이후 혹은 산업화 이후에 보급된 술이라고 믿고 있다. 이 땅에 소주가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이다. 13세기 원나라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몽골족들이 즐기던 증류방식의 술이 들어왔다.

원나라는 일본을 치기 위해 고려의 개성과 안동에 병참기지를 설치했는데, 여기에 소주공장도 함께 차렸다고 한다. 개성지방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르는데, 몽골어 아라키를 음차한 것이다. 안동지방에는 지금까지 안동소주가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초기의 소주는 곡식을 증류시켜 만든 것이라 값이 비싸 왕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고 한다.
몽골이 소주를 개발한 민족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서 들여왔을까. 유럽 대륙을 달리던 그들은 페르시아에서 이 술을 발견했다. 그들은 향수의 증류제조 기술을 응용하여 증류주를 만들고 있었다. 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이 개발한 것이었다. 그러니 소주는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셈이다. 이 기술은 12세기 십자군 원정 때 유럽으로 전파되어 위스키와 브랜디의 아버지가 된다.

14세기에 접어들면서 소주 열풍은 고려를 휩쓴다. 1375년에는 조정에서 소주금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그랬는데도 이듬해 경상도원수가 기생을 끼고 소주 술파티를 벌이다가 왜구의 침입을 받고 그대로 무너진 일이 일어났다. 조선시대에도 소주 애용은 여전하였다. 퇴계 시대에도 이 독주와 관련한 고관의 음주문제가 끊이지 않아, 이에 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금주령이 내렸을 때 서민들은 즐겨마시던 막걸리를 끊었지만, 왕족과 귀족들은 핑계를 대며 청주 음주를 끊지 않았다. 청주는 술이 아니라 약이라는 '약주론'이 그 핑계였다.

삼국시대에는 '미인주(美人酒)'라는 술이 있었다. 술자리에 미인이 빠지지 않는 것이 풍류라고 생각했던 옛남자들의 취향이 술을 제조하는 방식과 어우러져 나온, 기묘한 술이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을 모아 쌀과 밀을 씹도록 한 뒤 그것을 뱉어내게 한다. 그 뱉은 것들을 발효시켜 만든 것이 바로 미인주이다. 원리는 이렇다. 곡물의 전분이 침 속에 들어있는 프티알린이란 효소에 의해 당화되면서 발효를 하여 술이 되는 것이다. 여인의 침 대신에 보통 활용하는 것은 누룩(麴)이다. 이 누룩이란 한자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발효주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가. 누룩은 밀같은 곡물을 반죽해놓으면 곰팡이의 포자가 붙어 발효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주의 '소'자는, 유심히 본 분들은 알겠지만 소각이나 연소할 때의 '불태울 소'자가 아니다. 이것은 불을 세번 땐다는 의미의 '세번 끓일 소'이다. 소주가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한자일 것이다. 소주에는 증류식 소주가 있고 희석식 소주가 있다. 증류식은 딱 한번 증류를 한 술로, 안동소주나 문배주같은 것들이 해당된다. 대개 1회 증류주는 독한 술이 많다. 희석식은 고구마와 사탕수수를 여러 차례 가열시켜서 증류를 거쳐 얻어낸 고농도의 주정(에틸 알콜, 이때 만들어진 당밀은 95%의 알콜 순도를 지닌다고 한다)을 물과 첨가제를 섞어서 만든 술이다. 우리가 마시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바로 이것이다.

3.1 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 소주도 나름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평양교구정에서 이름도 아름다운 '조선소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땅의 소주의 대부처럼 느껴지는 진로가 평남 용강에 진천양조회사를 차린 것은 1924년(창업자 장학엽)이었다. 이때 만들어낸 술은 35도 짜리 증류소주였다. 증류소주가 희석소주에게 자리를 넘겨준 것은 1965년이었다. 쌀 부족으로 쌀로 빚은 술을 금지하는 정책이 발표되고, 양곡관리법이 발효되어 곡물소주가 불허되었으며 술제조사들은 희석식으로 급전환해야 했다. 1973년엔 산업을 장악하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1도1주 소주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희석식 소주는 최근까지도 25도가 가장 맛이 아름다운 도수로 일컬어져 왔다. 25도 소주가 이 땅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함께 이뤘다고 해도 술취한 소리는 아니리라. 그런데 처음처럼이란 아주 시적인 이름의 술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술 취향이 부드러움을 찾는 쪽으로 전환하면서 20도 이하의 술이 히트를 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맥주와 타는 소폭이 번성하면서 부드러움과 알싸함의 조화를 찾는 이가, 순한 소주의 바람을 증폭시켰다.

소주를 세계 최고의 맛이라고 뻐길 생각은 없다. 영양이 일등이라고 우길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다만 소주는 숙취가 없고 뒤탈이 없기로는 세계 으뜸이라 할 만하다. 혹자는 소주가 화학주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곡류가 그 원료라는 점은 다르지 않고, 오히려 여러 번 증류하면서 무색 무취로 곡류가 지닌 골때리는 후유증 따위를 말끔히 없앤 공로가 있다. 첨가제가 문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쯤의 해로움은 빵 한 조각에도 비슷한 분량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주의 단맛을 탓하는 사람은, 술 자체를 안 먹는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음식에서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가 크다.

여하튼 소주를 오래 마셔본 사람은, 이 술이 지닌 미묘한 음용 느낌을 최고로 꼽는다. 아무런 맛도 없는 듯 하면서도 애틋하고 맑고 서러운 액체가 청아한 향기와 함께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느낌 말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와, 그 많은 서러운 사연들과 고달픈 인생길이 서둘러 털어넣는 그 작은 잔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이 맛은 역사요, 풍경이요, 감정이요, 정한 그리움같은 것이다. 소주 한 잔을 들고 아름다운 생각과 빛나는 화해와 슬픔의 위로와 멋진 팀웍과 뜨거운 부활을 이뤄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이 술이 해낸 일도 거대한 나라경제이며 국력이 아닐 수 없다. 한 시대의 유장한 굽이에 서서, 소주 한잔을 들고 권주가를 부르나니, 그대여 기꺼이 마시고 또다른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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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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