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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오늘의 유머(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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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슬픈 지경에 빠진 사람이, 그 경황 속에서도 유머를 구사하는 외국영화를 보면서, 저 친구들은 비극을 어떻게 이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시험하는 위기와 고통의 시련 앞에서도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뱉는 저 남자가 우리 사회에 와서 똑같은 행위를 한다면 미친 놈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슬픔은 슬픔으로 정열해야 하고 고통은 고통으로 나눠야 하며 곡소리엔 곡소리로 통일되어 배열되기를 바라는 우리는, 분위기를 위반하는 다른 감정에 대해 분노하고 경멸하며 매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저들의 유머와 농담이 습관에서 나오고 삶의 양식(樣式)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건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담과 절망 앞에서, 그것을 객관화하고 냉정을 찾으려는 인간적인 노력이 과소평가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저들의 유머는 개인적인 자질이나 문화적인 관용을 넘어 '여유'를 유지하려는 축적된 저력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슬픔이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슬픔을 전도하는 이성적 내력(耐力)과 내공이 거기에 담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우리는 소통의 최우선 순위를 '신속과 정확'에 두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인생을 빛나게 하고 세상을 부드럽고 풍요롭게 하는 '유머'나 익살에 두는 것이 낯설다. 우린 그러기에는 여유도 없고, 또 그런 방식으로 쌓아온 추억도 빈약하다.
같은 종류의 감정이라고 동일한 값은 아니다. 그것은 환경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지향하는 가치에 달린 것일수도 있으며 결과와 결부될수도 있다. 슬픔의 값과 분노의 값, 증오의 값과 저항의 값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감히 분노할 수 없을 때, 모든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내놓는 분노는 거룩한 분노이다. 수주 변영로는 논개의 분노를 그렇게 불렀다. 이미 하나의 흐름이 된 분노에 스스로의 분노를 추가하는 양상일 때는, 그 감정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미 '분노의 품질이 변한 분노'이거나 '분노를 위한 분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는 분노를 부추기거나 억누르는 힘을 기반으로 삼아 성장하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분노의 자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비극 속에서도 끊임없이 지껄이는, 서양의 유머감각은 비극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에 휩쓸려 또다른 우행에 빠지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냉철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유머는 삶의 한가함에서 생겨나는 여분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무대에서 누군가가 우릴 웃겨주기 위해 머리를 짜내 만들어낸 별난 행동과 말이라고만 생각해온 우리에게, 일상을 견지해나가는 저 '오늘의 유머'는 얼마나 먼 풍경인가.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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