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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단양 제1경은 '사암풍병'(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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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퇴계의 사랑 두향(57)

[千日野話]단양 제1경은 '사암풍병'(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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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爭激浪崩雲上(기쟁격랑붕운상)하니
재入淸潭拭鏡中(재입청담식경중)이라

거친 물결과 몇 번을 싸웠던가 산을 뭉갠 구름 위 오르더니
이젠 맑은 연못에 들어와 잘 닦은 거울 속일세

鬼刻千形山露骨(귀각천형산로골)하니
仙游萬인鶴盤風(선유만인학반풍)이라
귀신이 새긴 천가지 형상, 산의 뼈로 드러나고
신선이 노닌 만 길의 높이, 학이 바람을 타네

“오오!”

이지번이 감탄사를 뱉는다.

“구담을 읊은 시 중에 이토록 아름답고 장쾌한 것이 또 있었을지요. 하늘과 땅, 물과 바위, 골짜기와 바람이 서로를 물고 들이치고 내뱉으며 서로를 품는 기운이 살아있는 문자로 꿈틀거리는 듯 합니다.”

“구옹(龜翁, 이지번)이 생각해둔 단양 제2경은 무엇이온지?”

퇴계가 물었다.

“저는 저 황황홀홀한 시격(詩格)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니, 그저 제가 띳집에서 보던 풍경으로 이름지을까 합니다.”

“날마다 이 우람한 절벽과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산과 물을 대하시니, 그보다 더한 실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허허, 기대가 크시니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구로모담(龜老慕潭)’이라고 짓고 싶습니다.”

“오오. 늙은 거북이 물을 사모한다는 뜻이구료. 과연 구옹답습니다. 거북은 물에서 노니는 영물인데 봉우리의 바위가 되어 고개를 들고 있으니 그 마음은 늘 벼랑 아래 물을 바라보는 것이겠군요. 거북바위가 담(潭)에 비치는 풍경을 절묘하게 잡아낸 표현입니다.”

공서가 탄복하며 이렇게 말하자, 퇴계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구옹이 바로 늙은 거북이니, 저 맑은 물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물길이 거칠어져 파도가 치고 급류가 생겨나면, 도무지 제 얼굴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그 또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구담의 풍경은, 300년 뒤 추사 김정희(1786-1856)도 그려놓고 있다. 그의 시상(詩想)이 이지번의 ‘구로모담’과 닮아있어 소개한다.

거북같은 괴상한 바위가 물 닿은 벽을 타고 내려와
물줄기 뿜어 비를 만드니 하얗게 하늘에 이어지네
산봉우리들 모두 연꽃빛을 띠는데
한번 웃고 보니 작은 동전같구나

석괴여구하벽연(石怪如龜下碧漣)
분파성우백연천(噴派成雨白連天)
중봉개작부용색(衆峰皆作芙蓉色)
일소간래사소전(一笑看來似小錢)

퇴계가 말했다.

“단양 제1경인 사암풍병(舍巖楓屛)과 제2경인 구로모담(龜老慕潭)을 정했으니, 다음은 도담삼봉으로 가보기로 할까요? 도담의 풍경은 밝달선비가 지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명월이 말했다.

“알겠사옵니다. 사또 나으리. 이런 멋진 탐승(探勝)에 끼워주시니 감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송도서 온 명월은 서른을 넘긴 듯한 여인으로, 자색(姿色)이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웃지 않고 말투도 담담하여 학자의 풍모가 있었다.

일행은 배를 탔다. 소용돌이치는 시퍼런 소(沼)의 기운이 거대한 용의 꿈틀거림처럼 위협적이다. 소백산 연봉(連峰)들의 자락을 적시고 내달리던 물길이 마침내 툭 터지면서 시야를 압도하는 돌봉우리 세 개가 보인다. 중봉(中峰)의 높이는 20장(丈) 남짓하다. 허리께에 정자 하나를 매달고 있다. 남봉은 8장, 북봉은 5장쯤 되어 보인다. 배에서 보니 섬들은 모두 남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퇴계 일행은 험한 물길을 피해 조심스럽게 배를 대고 중봉의 정자에 오른다. 이 정자는 ‘삼봉정(三峰亭)’이라 불렀다. (현재 이곳에 들어서 있는 것은 1976년 성신양화 김상수가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6각형 정자로 ‘삼도정(三島亭)’이라 부른다. 그 이전에 1766년 단양군수 조정세가 지은 능영정(凌瀛亭, 바다 위에 올라탄 집)이 있었으나, 무너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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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단양 제1경은 '사암풍병'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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