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姓까지 바꾸면서 '안중근 추모사업'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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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5촌 조카며느리 안노길 할머니 별세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며느리이자 생전 안 의사 추모사업에 헌신한 안노길 할머니가 18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별세했다. 향년 102세.

황해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열일곱 살 되던 해 안 의사의 사촌 동생인 홍근(洪根)씨의 3남 무생(武生)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지만 일제 패망을 앞둔 1944년, 일본 앞잡이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남편을 잃었다. 부부연을 맺은 지 14년 만이었다.
"내가 안중근 가문의 며느리인데 이렇게 물러설 수 없다." 독립운동가의 가문에 시집와 애국심이 남달랐던 그는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한다. 고인은 남편의 죽음으로 안 의사 가문과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원래 성(姓)인 차(車)씨를 안(安)씨로 바꿔 안 의사의 정신을 이어갔다.

이듬해 조국엔 '해방의 봄'이 찾아왔지만 할머니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안 의사 추모사업을 펼치기로 작정한 곳이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인이 시시때때로 펼쳐들었던 태극기는 공산정권이 들어선 중국에선 적성 국가 깃발이었던 것이다. 또 당국이 금지한 로마카톨릭교회 신앙을 따른 것도 시비거리가 됐다. 이 때문에 고인은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40년간 옥살이를 했다. 생의 절반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감옥에 있을 때도 고인의 안 의사 공적 알리기는 계속 됐다. 치마 실오라기를 풀어 태극기를 만들어 감옥에 걸고 독립군복과 모자를 만들어 입고 썼다. 개조 불능의 불순분자로 몰린 고인은 1972년 오지인 네이멍구(內蒙古)의 노동교화감옥 농장으로 이감돼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러다가 한국과 수교가 이뤄지면서 1998년에야 감옥에서 풀려났다.
40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하얼빈의 성당을 전전하다 2000년 우연히 최 베드로 수녀(76ㆍ전 카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원장)을 알게 됐고 비로소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추모사업이 벌어졌던 2010년 국내 언론매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10월엔 하얼빈역에서 열린 '안 의사 100주년 기념 손도장 찍기 행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고인은 한국 대학생들에게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고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외부의 탄압에도 꼿꼿이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고인이었지만 노환으로 인한 건강 악화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지난해 9월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고인은 올해 들어서는 거동은 물론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지난 1월 하얼빈에 안 의사의 기념관이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에도 말 없이 고개만 떨구었다고 한다.

최 수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처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온 할머니를 더 잘 보살펴 드렸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면서 "할머니와 멀리서 할머니를 후원하며 정성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평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20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 천주교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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