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뭔가에 대한 의견이나 태도를 물어보는 말에 예전에 비해 모호하게 말하는 것도 나이 들면서 굳어진 습관이다. 예컨대 '너는 진보인가 보수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예전에는 어느 한 쪽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진보라기보다는 '진보적인 면이 있다'로, 어떤 경우는 보수라기보다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종교에 대해서도 이런 식이어서 가톨릭 신자라기보다는 다만 '가톨릭적'이라고 할 뿐이다.
다만 이 같은 소심증이 가져다 주는 좋은 점도 있다.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과 단정은 겉으로 결연함과 비장함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몸에 과도한 긴장을 가져오게 되는데, 확신과 단정이 덜하니 몸이 조금이나마 더 가벼워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모호함과 소심증이 우리 사회에 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대담한 생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이야 이렇게 기우뚱하든 저렇게 기우뚱하든 대수로울 게 뭐 있으랴, 싶지만 확신과 단정이 좀 덜했으면 하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확고한 인식과 신념이 권력의 행사로써 나타나는 이들이다.
'간첩증거 조작 사건'을 보면서 검찰에 드는 생각이 바로 그렇다.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검찰은 상당한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이지만 검찰은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과거 많은 사건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오직 우리만이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도한 사명감과 결연함이 스스로를 피해자 아닌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기소독점과 함께 애국심까지 독점하려는 그 비장한 사명감이 결국 검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최근 최고 권력자의 말도 이런 점에서 염려가 된다. "규제는 우리의 '원수'다." 그 이전에 "진돗개처럼 꽉 물고 놓지 말라"고 한 발언은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말로 주목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이 말에 대해 대통령의 언어로서의 적절성에 대해 지적을 하는 듯한데, 내가 그보다 염려됐던 것은 이런 류의 언어 속에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상당 부분 보여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적을 정복하고 격퇴, 섬멸하는 게 아니다. 흑 속에 백이 있고, 백 속에 흑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 양쪽을 껴안는 것일 듯하다. 진돗개 정신으로 원수를 공격하는 '돌격 지시'로는 안 되는 것일 듯하다. 비장함을 좀 내려놓기를. 그것이 그 자신의 건강은 물론 이 사회의 건강, 나라의 건강에 좋을 듯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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