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의무교육의 진짜 의무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늦게 봐서 애지중지 키워온 딸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친구가 자못 감격한 어조로 엊그제 입학식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 아름씩 '선물', 그러니까 연필이며 공책이며 필통을 나눠 주더라는 것이다. 그 친구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러잖아도 학교에 들어간다는 설렘으로 들떠 있던 아이는 더욱 신이 났다고 한다. 평소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던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든 필통이며 크레파스를 몇번이고 만져보며 기분이 우쭐해졌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받아든 필통이며 학용품들은 액수로는 사실 얼마 안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아빠가 "의무교육이란 게 이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것처럼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마련한 그 선물은 '의무교육'이 뭔가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이 받은 것은 학교와 교육제도가 의무교육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더욱 온전히 다하려는 것의 표현이었다. 그 선물은 의무교육이란 법으로 취학을 강제하고 학비를 무료로 지급하는 것 이상의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그것은 환대의 의무, 축복의 의무다. 호기심과 설렘 한 편에 육중한 교사(校舍) 앞에서 움츠러들기도 하는 어린이들을 학교가 온 정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의무다.
어쩌면 선물을 받은 것은 아이들이 아닌지 모른다. 해마다 학교에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은 한 문명, 한 사회를 면면히 잇는 사업에 어린이들이 자기 몫을 맡아 짊어진다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 이 사회가 소멸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니, 아직 낯선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 그것은 초봄 운동장의 땅 속에서 올라오는 움처럼 새로운 생명이 만물을 깨우는 기운이며 복음이다. 그러므로 학교가 마련한 선물은 실은 아이들이 준 큰 선물과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최소한의 답례이며 작은 정성인 것이다. 그들이 베풀어주는 선물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한 보답인 것이다.

그렇게 받들어지고, 환대받고 귀한 대접을 받은 아이들은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지며 베푸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나누고 베푸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학교가 그런 곳이라는 것을 익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와 어른들의 몫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의무교육을 완성시키는 진짜 의무일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