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발탁' '깜짝'이라는 수식어는 늘 그의 몫이었다. 1947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주일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잠시 조흥은행에 몸담았다. 그 뒤 1976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20년 넘게 증권맨으로 살았다. 33세에 상무로 발탁돼 금융권에 파란을 일으켰고, 1997년 동원증권 사장에 올랐다.
국민·주택은행 합병 뒤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으로 주가를 올려놓은 것도 유명한 얘기다. 출범 당시 4만원 선이던 국민은행 주가는 고인 재임 중 9만원 가까이 치솟았다. 증권가엔 '김정태를 보고 국민은행을 산다'는 말이 파다했고, '최고경영자(CEO) 주가'라는 신조어가 이 때부터 회자됐다. 2001년 9·11 테러 후 폭락장에선 헐값에 우량주를 사들여 대박을 냈다. 보수적인 은행의 투자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사건이었다.
타고난 장사꾼이며 승부사였지만, 외압에는 꼿꼿했다. 정부의 서슬이 퍼렇던 2004년 'LG카드 사태' 당시엔 출자전환을 요구하는 정부에 '아니오'를 외쳤다. LG카드 파산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져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는 고집이었다. 관가에선 "말 안듣는 김 행장이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꿔놨다"는 후일담이 돌았다.
지인들은 "강골은 아니었지만, 지병이 호전되던 중 황망한 소식을 들었다"면서 "지난주 갑자기 집에서 쓰러진 뒤 의식을 찾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경진씨와 아들 운식(브로드컴 근무), 딸 운영(구글 근무)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02-3779-1918), 발인은 4일 오전 9시, 장지는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이다. 유족들은 부조와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밝혔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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