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돌·왕따‥"나는 공직사회의 敵"
개방형 임용제 채용된 어느 공무원의 고백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해 한 지방자치단체에 개방형 임용직으로 채용된 A씨는 요즘 "공무원들이 나를 일하게 놔두지 않는다"고 한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일을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수시로 퍼뜨리는 바람에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사람',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힐 정도라는 것이다. A씨는 "내가 일하는 곳에 개방형 임용직 공무원은 몇명 안되는데도 공무원들이 심하게 견제한다. 특히 과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들은 나를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적으로 인식하는 게 눈에 뚜렷이 나타날 정도"라며 "공무원들이 개방형 임용직 공무원들을 향해 '공직 사회를 잘 모른다', '시민단체의 논리만 갖고 대안없는 비판만 늘어놓는다'는 식의 소문을 퍼뜨려 아예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호소했다. A씨는 지난 봄에는 공무원노조로부터 집단 항의 방문을 받는 일까지 당했다. 공무원들은 우루루 몰려와 그에게 "공직 사회에 누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지만 그에겐 '협박'처럼 들렸다.
정부가 민간전문가를 수혈해 공직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시행하고 있는 '개방형 임용제'가 여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부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임금 등 제도적 정비와 함께 폐쇄적 조직 분위기를 일신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13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중앙 부처 국과장급의 정원 20%를 민간 전문가에게 개방해 채용할 수 있는 '개방형 임용제'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민간인이 채용되는 비율은 전체의 20~30%대에 머물고 있다. 이달 현재도 38개 정부 각 부ㆍ처ㆍ청ㆍ위원회 등에 지정된 고위공무원단(국장급) 개방형 직위는 170개지만, 이중 외부 임용은 60명으로 35%에 그쳤다. 나머지 자리 중 68개는 내부 공무원들로 채워졌고, 42개 자리는 충원이 진행중이거나 아직 충원 절차가 개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부실한 개방형 임용제 운용에 대한 지적은 해외에서도 나오고 있다. 최순영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지난 5월 펴낸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08년 회원국을 대상으로 '공직 개방성'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26개국 가운데 20위로 평균지수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개방형 임용제가 겉돌고 있는 원인으로는 우선 폐쇄적인 공직사회의 분위기에 따른 소극적인 공모와 폐쇄적 모집ㆍ임용절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A씨의 사례처럼 채용된 민간 전문가들이 소신껏 힘써 일할 수 있는 권한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은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성과 평가 및 보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한 정부부처는 전산 관련 기관의 장을 개방형 임용제로 모셔 오면서 형편없이 적은 연봉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던 민간 전문가에게 정부가 규정상 지급할 수 있는 것은 최대 8000여만원과 업무추진비 카드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부처 관계자는 "민간전문가들을 모시려고 해도 대우가 차이가 너무 나서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애국심에 호소해야 겨우 움직이는 지경"이라며 "개방형 임용제를 도입해 놓고 실질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 놓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최 연구위원은 "개방형임용제도의 성과 인식 민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해선 적극적 모집과 임용절차, 정실주의 극복을 통해 민간의 우수한 인재를 공직에 유치해 최적임자를 임용해야 하다"며 "임용 후에는 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 위원은 또 "적극적인 모집을 위해 개방형 및 계약직 직위 선정의 적절성을 제고하고, 유능한 인재를 충원하기 위해 충분한 보수를 제공하려는 노력 등 적극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며 "후보자 모집을 위한 공고기간, 모집 관련 정보제공 등을 충실히 하는 것, 선발시험위원회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등 선발 절차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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