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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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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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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니 수돗가 마당에 하림이 끌고 온 낡은 아반테 옆에 미끈한 흰색 그랜저가 한 대 서있었다. 조금 전 윤여사와 동철이 타고 온 차일 터였다. 이미 열두시가 가까워서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햇살이 따가웠다. 어젯밤 불던 을씨년스럽던 바람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윤여사가 운전석에 앉아 먼저 붕붕 공회전을 넣었다. 동철이 운전석 옆에 타고, 하림은 뒷자리에 혼자 앉았다. 흰색 그랜저는 곧 출발했다. 마당을 빠져나온 차는 과수원 옆길을 지나서 동네를 살짝 비켜 일직선으로 곧게 난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었다. 처음 이곳에 올 때 하소연와 마주쳤던 바로 그 길이었다.
오래간만의 외출에 하림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하림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올 때는 겨울의 끝 무렵이었는데 어느새 신록이 무성한 봄이었다. 모든 풍경이 눈부셨다.

“어때요? 지낼 만해요?”
큰길로 접어들자 아까 동철이 물었던 질문을 윤여사가 다시 했다.
하지만 윤여사의 물음은 의미가 달랐다. 무언가를 탐색하고 알아보려는 뜻이 숨어있을 것이었다.
“예. 그럭저럭.....”
하지만 하림은 아까 동철에게 했던 것처럼 여전히 애매하게 대답을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동안 이곳에서 일어났던 심각한 이야기들을 꺼낼 수도 없었거니와 꼭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다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모님은 만나 보셨어요?”
“예. 두어번....”
“보통 아니시죠?”
윤여사가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하림의 눈과 마주치자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다 알고 있다는 뜻 같기도 했다.
“그러신 것 같더군요.”
하림이 역시 신통치 않게 대답했다.
“개 쏘아 죽인 범인은 좀 알아냈어?”
하림의 대답이 좀 싱겁다고 느꼈는지 앞자리에 앉아있던 동철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다짜고짜로 심문이라도 하듯 말했다. 윤여사 대신 던지는 질문일 것이었다. 하림은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자기가 마치 간첩이라도 되는 양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하림은 가볍게 부정하였다. 자기도 왜 자기 입에서 그런 대답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간첩 취급 받는 것도 싫은데다 꼬치꼬치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날 밤, 수도 고치러 온 사내가 총으로 개를 쏘아 죽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스름 속에 벌어졌던 일을 이런 환한 대낮에 하는 것도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다 아직 모든 것이 불분명했고, 하소연이 이야기부터 이층집 여자가 다녀간 이야기까지 그들에게 꼭 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비밀이어서 비밀이 아니라 웬일인지 그냥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후후. 그럼 이 아저씨가 잠만 잤다는 이야기잖아....?”
동철이 괜히 제풀에 겸연쩍어져서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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