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거탑' 김호창, 이 남자의 모든 것(인터뷰)
[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인터넷 검색창에 '김호창'이라는 이름을 입력하면 '김민찬'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김민찬이 가명이고, 김호창이 본명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본명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어쨌든 우리에게 배우 김호창은 케이블채널 tvN '푸른거탑'에 나오는 싸이코 상병으로 더욱 익숙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후임들을 '갈구려는' 그 무서운 눈빛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현재 그의 프로필에는 2009년 SBS 11기 공채 탤런트라는 데뷔 항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김호창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부각시킨 것이 바로 방송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기 까지 오직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건실한' 청년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의 눈빛에서는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 포항 사나이, 연기를 꿈꾸다
포항에서 살던 김호창은 고등학교 시절 처음 연기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토록 연기가 하고 싶었던 그는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대구에 있는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마침 그 연기학원에서 극단을 만들고 있었다. 학원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래서 김호창은 그 극단에 들어가 포스터를 붙이고 조명을 닦고, 콘솔 작동법을 배우며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제가 연기가 하고 싶어서 더욱 열정이 생겼어요. 그리고 사투리가 심하다 보니까 이걸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보니 '우리 읍내'라는 마임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마임극부터 시작해서 19살 때 오디션을 보고는 극단에서 햄릿이 됐죠."
김호창에게 연기를 가르쳐 준 선생님들이 김호창을 유독 아꼈다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김호창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한 분야는 연기가 아닌 영업이었다. 그것도 고등학생이 말이다. 극단 포스터가 나오면 김호창은 협찬을 얻어냈다. 그러나 김호창은 연기에 대한 공부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구에 있는 어느 공사장에서 몰래 새벽에 자재를 훔쳐와 무대를 짓기도 했죠.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햄릿을 연습중 이었는데, 단국대 수시모집 공고가 떴어요. 그래서 문득 서울 사는 애들은 연기를 어떻게 할까 궁금해졌죠. 서울 가서 시험 보면 전국에서 연기하는 친구들을 모두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원서를 냈는데, 원서를 너무 빨리 낸 거예요. 결국 가장 먼저 시험보고 합격하게 됐죠. 조승우, 故 이은주, 김민희, 사강, 하지원, 이요원 선배님들 모두 학교에 그냥 돌아다니더군요."
◆ 드라마 같았던 국립극단 오디션 합격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와 전설같은 선배들과 학교생활을 즐기던 그에게 운명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함께 들어온 동기들이 취업이나 소위 잘 나간다는 극단 오디션을 보러 다닐 무렵, 한 동기가 국립극단 오디션을 본다는 얘길 듣게 됐다. 아직 졸업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김호창이었기에 그에게는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김호창은 특유의 넉살을 발휘해 무작정 친구를 따라가 원서를 제출했다. 원서 접수 담당자는 그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지만, 김호창은 말도 안 되는 '땡깡'을 부리며 졸라댔다.
오디션 당일. 김호창의 눈앞에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앉아 있었다. 또한 함께 오디션에 참가하는 사람들 모두 현업에서 활동 중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김호창은 그들을 보며 "아, 이게 진정한 프로의 무대구나. 내가 고등학교 때 했던 연극이나 학교 수업과는 또 다르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긴장감이 심장을 짓누르고 있을 무렵, 그는 아무도 없는 옥상에 혼자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혼자 옥상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어요. 제가 계속 거기 있으면 선배들 기에 눌려서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시험 감독관이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시험장 문을 열었죠. 연극 수업 때 보던 교과서에 등장하던 분들이 거기 모두 앉아 계셨어요. 그래서 그만 저도 모르게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왔죠."
김호창은 이미 떨어질 걸 직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디션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에게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합격이었다. 그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객원단원 선발에 뽑혔기 때문. 젊은 단원들만 뽑힐 수 있었기에 김호창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 국립극단에 최연소로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렇게 국립극단에서 생활하며 최고의 선생님들과 연기할 수 있었다. 많이 배우고 또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 뮤지컬 출연, SBS 공채 탤런트 합격, 하지만…
일본 동경에서 열린 세계 국립극단 페스티벌에 참여한 김호창은 귀국 길에 배우 故 서희승으로부터 국립극단으로부터 나가라는 말을 듣게 됐다. 이곳에 있으면 더 큰 배우로 성장할 수 없다는 충고였다. 김호창은 그 말을 듣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후 일주일간의 휴식시간 뒤 그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뮤지컬을 한 번 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뮤지컬의 '뮤'자도 몰랐던 김호창은 그렇게 뮤지컬 생활을 시작했다.
"뮤지컬 생활을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여기서는 연기를 잘한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데, 가끔 TV를 보면 '나도 저 사람처럼 똑같은 연기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요. 저 사람들보다 더 잘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TV에 나올 수 있지? 그러면서 소위 잘 나간다는 기획사들을 돌아다니며 직접 프로필을 내기도 했죠."
방송 출연 의지를 보이던 김호창은 우연히 접한 SBS 공채 오디션에 응시해 합격했다. 공채만 합격하면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배우로서의 앞날은 그러나 전혀 딴 판이었다. 매니저 없이 혼자 활동하던 그로서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홀로 감독들을 만나야 했다. 다른 기획사 매니저가 소속 배우의 프로필을 내밀 때, 그는 스스로 자신의 프로필을 내야했다. 그리고 행인1 병사13 등 이름조차 없는 단역들을 소화하다 이 자리까지 왔다.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도 어느 순간 출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떤 때는 촬영 일주일 전에 까이기도 했어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죠. 실력으로 들어와도 까이는 거죠. 다행히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출연이 확정된 거죠. 안타까운 건, 서브 주인공을 해도 그 다음 작품에서는 다시 단역부터 시작해야했다는 거예요. 먹고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죠."
◆ 인생의 터닝포인트 된 '푸른거탑' 출연
김호창이 숱한 작품에서 출연을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건 그렇게 거절당한 작품이 대박이 나고 또 그가 연기하려던 캐릭터가 대박이 나 연말 시상식에서 상까지 거머쥔 경우다. 그래서 그는 욕도 많이 하고, 술로 시간을 보내며 힘들어했다. 연기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 그때 처음 생긴 매니저가 그에게 '푸른거탑' 대본을 들고 왔다. 매니저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이미지만 안 좋아질 것이라며 말렸지만, 김호창은 "내가 무슨 이미지가 있느냐"며 출연을 결정했다. 당시 그의 상황에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으니까.
'롤러코스터'라는 프로그램의 작은 코너로 시작한 '푸른거탑'은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그리고 코너를 벗어나 버젓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면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김호창은 '싸이코 상병'이라는 캐릭터로 그동안 겪은 무명 설움을 한 번에 털어버릴 수 있었다.
"원래 제 캐릭터는 싸이코가 아니었어요. 내무실 실세 캐릭터였죠. 하지만 독립드라마가 되면서 연장이 결정되고, 그래서 작가님에게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했죠.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싸이코였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드라마 속 주인공 친구들만 연기했었어요. 송중기 친구, 지창욱 친구 등 주인공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죠. 자기만의 스토리가 없었어요. 그러다 '푸른거탑'을 통해 숨통이 트인거죠. 연기 갈증이 있을 때 온 캐릭터였어요."
'푸른거탑' 시즌1 촬영을 마친 김호창은 요즘 일본어 공부에 한창이다. 그런데 그가 일본어 공부를 하는 이유가 감동적이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가 일본에서 히트를 하면서 일본 팬들이 그에게 메일을 보내온 것. 그래서 팬들에게 답장이라도 한 줄 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그 밖에도 기타와 암벽등반까지 소화하고 있는 김호창.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국민배우가 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영화 '쉬리'를 본 다음이었어요. 최민식 선배님을 보고 '저런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또 대학에서 조승우 선배님이 공연과 뮤지컬에서 종회무진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하지?'라고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생각한 게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자 였죠. 국민배우요. 저 사람이 나오는 작품은 믿고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믿고 보는 배우인거죠. 그게 바로 국민배우 아닌가요?"
사진=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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