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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수의 조세이야기]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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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회사에 다닌 지도 벌써 이십 년 하고도 일년이 넘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소위 상장회사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회사도 아니지만 나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이도 둘이나 키울 수 있었다. 나는 그리 뛰어난 직원도 아니었고 회사에 없어서는 안될 인재라고 볼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회사에 오랫동안 근속하였음을 인정받아 작년에 이사로 취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작년이 나에게 더욱더 의미 있었던 이유는 직장에서 이사로 승진한 외에도 회사의 대주주들로부터 회사 지분을 이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우리 회사는 두 분의 창업자에 의하여 설립된 회사였는데 그 두분 중 한 분이 이제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와 자식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지분을 청산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혼자 남게 되는 다른 한 분의 창업자께서도 자신의 지분 일부를 나에게 이전해줄 테니 같이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던 것이다. 30년 가까이 된 회사인데도 1인주주회사라는 것이 남 보기에도 그렇고 내가 이 회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아무래도 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어찌되었건 나는,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 우리 회사의 33%의 지분을 가진 주주로부터는 15,000만주, 66%의 지분을 가진 다른 주주로부터는 1,000주 합계 16,000주를 1주당 가격 10,000원으로 정하여 대금 합계 160,000,000원에 양수하였다. 요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웹툰 ‘미생(未生)’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평생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다 바치고도 나이 사오십이 넘으면 상당수 정든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나는 회사의 임원도 되고 회사의 지분도 갖게 되었으니 작년 한해는 나에게 정말 운수대통의 한 해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나는 더욱 일찍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고 밤늦게까지 서류를 들쳐봐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제 나는 이사로 부임한 지도, 우리 회사의 주주가 된 지도 일년이 지났다. 책임은 늘었지만 그야말로 살맛 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세무서로부터 온 증여세부과고지서를 건네 받았다. 우리 회사에 대하여 주식변동조사를 실시한 세무서에서 내가 작년에 주식을 양수한 것이 ’(특수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시가보다 낮은 가액으로 재산을 양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즉 세무서는 우리 회사의 주식 1주당 가액을 내가 산 가격인 주당 10,000원보다 훨씬 높은 39,000원이라고 평가하였고 이에 따라 내가 시가보다 무려 1주당 29,000원이나 낮은 가액으로 주식을 양수한 것이므로 그 차액 상당을 내가 증여받은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나는 20년지기인 광화문에 있는 박변호사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박변호사 말에 의하면, (특수관계자 사이에) 시가보다 낮은 가액으로 재산을 양수한 경우라면 그 실질에 관계없이 증여로 의제되므로, 주식의 거래에서 거래당사자 사이에 부의 무상이전에 대한 인식이나 의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증여세를 납부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두2505 판결, 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4두4727 판결 참조)는 것이었다. 즉 나는 작년에 주식양수 당시 대주주들로부터 주식을 저가에 매수함으로써 부를 이전 받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단지 내가 이십 년간 근속한 사랑하는 우리 회사의 주식을 양수하여 진정한 회사의 주인이 된다고만 생각했었을 뿐인데도 나는 엄청난 증여세를 납부할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우리회사 주식은 비상장주식이니 그 가액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고 양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세무서는 그저 그 결과만 보고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우리 회사는 비상장회사라 이 주식을 어디 가서 살 사람을 쉽게 찾기도 힘들다. 부모자식간에만 증여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증여세를 납부하게 될 줄이야. 어찌되었건 나는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금전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지금 창가를 내다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이 더욱더 쌉싸래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박흥수 변호사(gmdtn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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