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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성장史]<36>면사 수입상 이병철·車수리공 정주영…기업의 전설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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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함께 1세대 자본가 몰락
백낙승만 태창으로 살아남아
진주청년 구인회, 낙희공업 설립
조중훈, 트럭 한대로 '한진' 시작
박인천, 택시 두대로 운송업 투신

[아시아경제 ]해방과 함께 경제계의 판도 또한 크게 요동쳤다. 박흥식과 김연수를 비롯해 광산 재벌의 이종만, 자동차왕 방의석, 동일은행의 민규식, 금광왕 최창학 등 한국 자본주의의 여명기를 이끌었던 1세대 자본가들이 대부분 쪼그라들고 말거나 몰락의 길을 걸었다.

우선 누가 뭐래도 민족자본의 첫 결집체요, 근대기업을 넘어 일본의 거대 자본과 자웅을 겨루었던 경방의 김연수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경방을 최두선→김용완에게 맡기고 경제계에서 잠정 은퇴했다. 자그마치 5만석지기의 토지를 가진 조선 말기 최고 부자 민영휘의 재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동일은행의 민규식은, 해방 직후에도 영보그룹을 이끌면서 조선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비교적 활발히 움직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조선상호은행을 비롯한 거대 금융자본을 잃으면서 경제계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반민특위 체포 1호를 기록했던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또한 친일파라는 주홍글씨를 지우지 못한 채 조카뻘 되는 박병교를 대신 내세워야 했다. 금광왕 최창학은 여전히 기업경영을 외면한 채 무역업자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었으나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갈아타는데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면서 초라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다만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종로 육의전의 마지막 후예'인 백낙승만이 변신에 성공한다. 이승만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끝에 한국 최초의 재벌인 태창재벌로 비상하지만, 그 역시 이승만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이렇듯 한국 자본주의의 여명기를 이끌었던 1세대 기업가들이 해방 이후 대부분 쪼그라들고 만 자리에 대신 무명의 지방 젊은 기업가들이 서울로 올라와 새 둥지를 틀고 나섰다. 그동안 김연수나 박흥식과 같은 초대형 고래들이 노닐고 있는 중앙 무대엔 언감생심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던 지방의 송사리들이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기회를 쫓아 속속 서울로 몰려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얼굴들이 해방 공간에서의 혼란을 헤쳐 나가면서 훗날 한국 자본주의의를 만개하게 된다.
먼저 대구에서 삼성상회와 조선양조(주)를 경영하던 이병철이 서울로 올라온 것은 1948년 세밑이었다. 그는 서울의 이웃에 살고 있던 동향 출신의 조홍제와 동업으로 삼성물산을 설립, 오징어와 한천 따위를 수출하고 면사를 수입하는 무역업으로 훗날 자산 규모 300조원의 국가대표기업 삼성을 일으키는 첫 출발점으로 삼는다.

정주영은 해방 이듬해에 미군정으로부터 중구 초동 땅 200여평을 불하받아 해방 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의 경험을 살려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열었다. 초기에는 미군 병기창의 작업을 청부받아 하다가 1년쯤 뒤부터 낡아빠진 일제 고물차를 용도에 따라 개조하는 일을 했다. 1.5t짜리 트럭의 중간을 이어 덧붙여서 2.5t짜리로 만들어 내거나 휘발유차를 목탄차나 카바이드차로 개조하기도 했다. 해방 후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공장은 날로 번창해 1년 만에 종업원 수가 80여명으로 늘었다. 자신감을 얻은 정주영은 뒤이어 공장 한쪽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 하나를 더 내걸었다.

진주에서 포목상점을 하던 구인회는 해방이 되자 서울 대신 부산으로 거점을 옮겼다.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내고 목탄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목탄 사업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다, 우연히 화장품 제조 기술자를 만나면서 업종을 바꿨다. 낙희공업(주)을 설립하고 화장품 제조에 나섰다. LG의 시작이었다.

인천의 선창가에 이연공업사라는 엔진 수리공장을 냈다가 일제의 군수업체에 강제 합병되고 말았던 조중훈은 해방이 되자 엔진 수리공장 재건에 발 벗고 나섰다. 그동안 틈틈이 아껴 모은 돈으로 트럭도 한 대 장만한 그는 간판도 한진상사로 새로이 내걸면서 지금의 한진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박인천은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운송업에 투신했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 광주 시내에서 여관방 하나를 얻어 시작한 광주택시는 신랑 신부를 택시에 태워 시내를 일주시키는 새로운 결혼 풍속이 생길 정도로 출발이 순탄했다. 광주택시가 자리를 잡아가자 이번에는 버스업으로 눈을 돌렸다. 문제는 자금 동원이었다. 일제 도요타 트럭 4대를 구입하고, 그것을 버스로 개조하는데 모두 560만원의 거액이 필요했다.

광주택시를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고 사채까지 끌어들여도 부족하자, 부속품은 외상으로 구입해야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1948년엔 택시와 버스의 운송 부분을 합친 광주여객자동차(주)로 재출범하게 됐다. 그리고 같은 해 세밑에는 그동안 전력을 다해 준비해온 광주여객의 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금호아시아나로의 비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 밖에도 청진에서 정어리 어업을 하던 설경동은 70여척에 달하는 대형 선단을 이끌고 남하해 무역업체 대한산업을 설립했다. 이어 그는 성냥공장, 부동산업에까지 손을 뻗쳐나갔다.

함흥에서 식품상점을 하다 남하한 이양구는 서울 거리에서 행상을 하다 과자상점을 마련했다. 훗날 동양제과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해방되기 전 만주와 중국 대륙에서 군수물자를 중개 무역하던 심상준은 곧바로 미군의 물자 수송을 맡았다. 군수용역으로 서울에 안착케 된 것이다.

사리원에서 정미소와 제분업을 하다 남하한 최성모는 여관업, 무역업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하다 고무신공장으로 전업했다.

서성환은 해방 직후 태평양화학이라는 초라한 간판을 내걸었다. 여성용 크림을 생산하는 화장품 제조업이었다.

강원도 통천에서 지방의 우체국장을 역임했던 박용학은 서울로 상경하자마자 대한계기제작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도량형기 매매업을 하면서 훗날 미도파백화점 등 대농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만주에서 자동차를 몰고 다니다 해방과 더불어 서울로 돌아온 김창원은 형이 경영하고 있던 조선이연공업의 서울 사무소장직을 맡았다. 일본 와카야마상업학교에서 공부한 그가 훗날 신진자동차공업을 설립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13살 때부터 철공소 견습공으로 기계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았던 김삼만은 해방이 되자 고향 진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기계류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철공소 대동공업을 열었다. 훗날 국내 최대 농기구 전문 기업인 대동공업의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3살 때 무작정 상경해 길거리에 붙어 있는 벽보를 보고 동양제약 외판사원으로 제약업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강중희는 해방이 되자 그간의 경험을 살려 동아약품(훗날 동아제약)을 설립했다. 어렵게 마련한 트럭 2대로 지방을 돌아다니며 약을 팔았으나 외국에서 들어온 신약에 대한 소문이 시골에까지 널리 퍼져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오래지 않아 38선이 그어지고 말면서 미처 북한 지역에서 회수하지 못한 미수금이 적잖았다. 위기에 처한 그를 도와준 것은 소화제 '생명수'였다. 생명수는 원래 제조허가를 받았으나 생산치 않고 있었다. 그러다 경성약전 출신의 약사가 입사하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생산을 개시했다.

기존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량감 있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는데, 바로 그 점이 주효한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강중희는 회사를 확장하고 나섰다. 당시 경제계에 폭풍처럼 불어 닥친 유행을 쫓아 무역업으로 눈을 돌렸다. 구미 지역에서 만든 약효가 뛰어난 제품들을 들여다 판다는 생각으로 자매회사 동아약품무역을 설립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이재준은 이미 해방 이전부터 부림상회라는 목재업으로 제법 성공한 터였다. 특히 해방 직전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수원에 비행장이 건설되면서 수백만 재에 달하는 레일용 침목을 비롯해 막사용 목재를 납품하게 됐는데 당시 일본군 사령부에선 행여 목재 납품이 늦어져 비행장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염려해 이례적으로 선급금까지 미리 지급해줘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이재준의 부림상회는 해방을 맞이했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사업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부림상회는 뜻밖의 위기를 맞게 된다. 38선 북쪽에 위치한 대규모 벌목장들을 비롯해 부동산 등 전체 자산의 70%에 달하는 규모를 북한에 몰수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재준은 북한에 소재한 자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해나갔다. 더구나 대부분의 산림이 북한에 편재돼 있는 만큼 앞으로 목재업은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수산업과 인쇄업에 투자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오지의 원시림 속에서 거목과 거친 씨름을 해가며 단련된 부림상회의 체질이나 문화에는 결코 맞지 않는 사업이었다. 결국 이재준은 한때 주택을 지어본 경험을 되살려 초기 사업을 진화시킨 건설업에 주력하기로 작정했다. 이때 회사명도 부림상회에서 지금의 대림산업으로 바꾸는 한편, 부평경찰서 신축 공사 수주를 시작으로 평생 건설 외길을 걷게 된다.

부친의 쌀가게 일을 도우며 사회에 진출하면서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가게 될 정태성이, 고향 영주에서 상경한 것은 해방 이듬해 가을이었다. 해방이 되기 전까지 정미업, 조림업, 목재업을 하던 그는, 서울에서 지인들을 만나 새로운 사업으로 합판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갖가지 기계를 구입했다. 공장은 대구에 지었다. 회사명은 아버지의 정미소 상호를 딴 성창기업이었다.

그러나 이내 기술과 경험 부족의 벽에 부딪쳤다. 하다못해 부품조차 구할 길이 없어 철공소를 뛰어다니며 일일이 제작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공장을 가동하긴 했으나 생산성이 워낙 낮아 경영 상태는 적자를 면할 수 없었다. 목재업에서 나는 이익으로 합판공장의 적자를 겨우 메워나가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장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나 기술자 한 명이 기계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쯤 되자 정태성은 더 이상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를 잃고 그만 공장 문을 닫기로 결정한다. 사고 처리를 끝내자 100여명의 기술자들과 종업원들에게 폐업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첫 실패의 아픔을 딛고 성창기업 대구공장을 다시 가동해 합판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꼭이 2년이 지나서였다.

인촌(仁村) 김성수를 존경한 나머지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마친 김성곤이, 대구에서 비누공장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한 것은 일제 말이었다. 해방이 되자 아무 미련 없이 비누공장을 처분하고서 상경한 뒤, 보다 새로운 사업 구상에 골몰했다.

김성곤은 이때에도 인촌 형제가 경영하던 경성방직을 떠올리며 방직업계에 뛰어들었다. 공장 건물과 대지, 방적기 2천추를 어렵잖게 적산으로 불하받아 금성방직을 설립하면서 훗날의 쌍룡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같이 1세대 기업가들이 해방을 맞으면서 대부분 쪼그라들고 만 자리에 대신 무명의 젊은 지방 기업가들이 일제히 중앙 무대로 올라왔다. 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대개 작은 밑천과 작은 경험만으로도 가능한 무역이며, 적산 기업을 불하받으면서 앞선 1세대 기업가들이 다 이루지 못한 집념의 도전을 이어받게 된다.

그나마 작은 밑천과 작은 경험으로도 가능한 무역이나 적산기업조차 불하받지 못한 나머지 무명의 젊은 지방 기업가들은 보잘 것 없는 상점이나 철공소, 정미소, 운수업, 기타 소규모 제조업으로 출발 선상에 섰다. 일찍이 이광수가 감지하고 예언해 내었던 그 '대군'이 마침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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