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재미난 놈.’ 김시진 전 넥센 감독이 떠올리는 제자 고원준(롯데)이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 아주 재밌는 놈이야.” 부드러운 팔 스윙, 공을 낚아채는 기술, 하체 리듬. 무엇보다 시선을 끈 건 배짱이었다.
“신인인데도 마운드에서 행동이 농익어.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똑같아. 멘탈이 좋더라고. 잘 될 놈이야.”
그로부터 2년여 뒤. 고원준은 롯데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정규 시즌 19경기에서 남긴 성적은 3승 7패 평균자책점 4.25. 소화한 투구도 95.1이닝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 특유 배짱도 그대로다. 선발 등판한 19일 SK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 이를 증명한다.
고원준은 깜짝 호투를 펼쳤다. 5.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팀의 4-1 승리를 견인했다. 허용한 안타는 3개. 정규 시즌 잃어버렸던 투구 밸런스를 회복하며 초반 난타를 대비한 양승호 감독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팀의 미래가 선보인 호투에 선배들은 힘을 냈다. 롯데는 1회 손아섭과 전준우의 적시타로 기선을 제압한 뒤 3회 강민호의 중전 적시타를 더해 3-0으로 달아났다. 6회에는 문규현이 1루 주자 황재균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2루타를 때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경기 뒤 고원준은 “이겨서 기분이 좋다. 슬라이더보다 체인지업을 많이 던진 게 효과를 봤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지난해 가을야구가 첫 경험이라 설렜다면 올해는 책임감 있게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긴장해서 던지니까 더 잘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원준의 배짱 투구로 롯데는 13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1승만을 남겨놓았다. 소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5이닝 이상의 소화로 불펜에 여유가 생겼다. 선수단의 사기 진작은 덤. ‘재미난 놈’의 배짱은 팀의 숙원을 해결할 중요한 열쇠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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