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5.0]아침에 눈 뜨니 '할 일 있는 요즘'
대기업 임원서 시민운동가로.. 노준식 도시마을공동체 대표
"내 인생 더 행복해졌습니다"
퇴직 후 3년간 똑같은 악몽.. 이젠 진짜 꿈꾸는 삶
"사회에 기여없는 노년은 부채를 떠안고 사는 삶"
사단법인 도시마을공동체 공동대표인 노준식(65)씨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퇴직 이후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직장생활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기만족을 느낀다는 얘기다.
노 대표는 "각각의 세대는 세대별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다"며 "하지만 개발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경쟁에 치여서 그런 행복을 제대로 누릴 여유가 없었다"고 직장생활을 회고했다.
노 대표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쌍용양회 쌍용증권 대우그룹 등을 거치며 고위임원을 지냈다. 한국사회에서는 나름대로 이른바 엘리트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런 그가 퇴직 이후엔 '평생직장'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는 이유가 뭘까? 노 대표는 "97년 외환위기 후 관계 중심에서 경쟁 중심, 효율 중심, 성과 중심 등으로 목표가 바뀌면서 직장생활이 삭막해졌다"며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어떻게 하면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시민운동가로서의 그의 삶은 이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는 퇴직 전부터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어떤 활동이 자신과 맞는 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은 8개 시민단체에 속해 후원 및 시민단체 경영을 맡고 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도시마을공동체는 아파트에 문화를 입히는 작업을 주로 한다. 노 대표는 "아파트의 외관 디자인 등 하드웨어는 급속도로 발전했는데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커뮤니티 문화는 예전과 같은 수준"이라며 "부녀회 등을 대상으로 '주민간에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등을 교육해 왔다"고 설명했다.
도시마을공동체 활동을 전국 단위로 확산하기 위해 얼마전엔 행정안전부에 사단법인 등록을 했다. 프로젝트 단위별로 재원을 마련해 아파트 문화 보급 전도사인 마을 활동가 육성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육성을 위한 마을 기업 발굴 사업 등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시니어들의 재능 기부 단체인 'U3A(University of the third age)서울(지혜로열린대학)' 활동도 그가 공을 들이는 분야다. 영국의 U3A를 모델로 조성된 이 단체는 은퇴 이후 노인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나 관심 있어 연구한 분야에 대해 다양한 강의를 한다. 노 대표는 최근 한국의 고궁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얼마전엔 경복궁을 주제로 현장 강연활동을 펼쳤고, 오는 9월엔 창덕궁을 주제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노 대표는 "풍수와 단청, 현판 등에 얽힌 역사적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며 "10회에 걸쳐 현장 강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U3A 서울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이와 함께 지구시민교육아카데미, 공정무역연합에서 이사 활동도 하고 있다. 노 대표는 "아침에 눈을 떠 계획해 놓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시니어들의 삶의 질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놓을 만한 수입 한푼 없는 다양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에 기여하는 데서 오는 참여의식과 그에 따른 존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가끔 강의를 하고 받는 수십만원이 수입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살아보면 큰 집과 비싼 차를 소유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소유를 줄여나가면 그리 많은 수입이 아니어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주변에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현재 24평 아파트에 와이프와 딸 내외, 두명의 손주 등과 함께 살고 있다. 차는 아들과 딸이 보태줘서 산 소울(소형차)을 몰고 있다. 인터뷰를 한 평창동 학산도서관은 그의 사무실과 다름이 없다. 그는 아침에 이 도서관으로 출근을 한 뒤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처음엔 돈벌이도 안되는 시민 운동을 하는 남편이 못마땅했던 와이프도 지금은 묵묵히 그의 활동을 응원해 준다고 한다.
그는 "현직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먹여살리는 시대"라며 "시니어들이 무엇인가 사회에 기여하지 않으면 부채를 떠안고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설명했다.
학산도서관 세미나실 그의 책상위엔 노트북과 함께 아이패드가 나란이 놓여있었다. 노트북은 자료를 찾고 작업을 하는 데 주로 쓰고, 아이패드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으로 후배 세대들과 소통을 할 때 주로 켠다고 한다. 그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젊은이들을 만나는 데 이 시대의 젊은 세대가 시니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건전하고 열린 생각들을 하고 있다"며 "이들의 생각을 수시로 듣고 시대에 발맞춰 살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트위터 등을 활용한다. 폴로워가 1만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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