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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블로그]불만 쌓이는 세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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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제정 러시아 절대군주인 표트르 대제는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천도 후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에게 긴 옷소매와 수염을 자르도록 했다. 유럽 문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근대화에 대한 의지였던 셈이다.

귀족들은 수염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일제시대 단발령에 대해 유학자들이 “목은 잘라도 머리는 못자른다”며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표트르 대제는 목숨을 건 귀족들의 저항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의 묘수는 다름 아닌 세금이었다.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하되 수염세를 부과한 것이다. 귀족들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던 하느님의 선물을 세금 앞에서 단칼에 잘라 버렸다.

조세에 대한 거부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서울 강남구의 첫 아파트 리모델링 사례인 쌍용예가(옛 동신아파트) 384가구에 대해 강남구가 3억여원의 취득세를 실수로 과다하게 부과했다. 2010년 말 취득세와 등록세가 취득세 단일세목으로 통합되면서 세율 적용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지난 7월27일 본보가 이 사실을 처음 보도했고 이어 몇 건의 후속기사를 내보냈다.
두 번째 기사가 나간 뒤 서울시 담당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간단히 인사말을 주고 받은 후 다짜고짜 “그 문제 아직도 해결이 안된겁니까? 기사가 또 나왔네요”라고 물었다.

해결을 해야할 담당 공무원이 오히려 기자에게 수습 여부를 묻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 “담당자 아니십니까? 저에게 물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아 그거요. 절차 밟아 환급하면 되는 겁니다. 간단한 문제인데 자꾸 기사가 나와서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일은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행정상의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환급을 통해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대하는 담당 공무원의 태도는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은 국가의 공적 서비스에 지불되는 가격이다. 다른 사적 서비스가 이용자의 만족도(효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반면 세금은 만족 여부와 상관없이 강제로 내야한다는 점이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부는 공적서비스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행정 공무원의 서비스가 민간의 그것보다 질이 떨어지는 것은 일종의 독점적 횡포다.

서울시 공무원이 기자에게 무심코 던진 “간단한 문제”라는 한마디는 어쩌면 이같은 독점적 횡포를 투영한 대표적인 사례다. 내는 쪽 입장에서보면 가구당 100만원 가까운 재산권이 걸린 문제인데 받는 쪽은 그 재산권을 한없이 가볍게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세금을 간단한 문제로 치부했던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혁명에 직면해야 했다. 1775년 미국의 독립혁명이 그랬고, 1789년 프랑스혁명, 1894년 동학혁명도 본질적으로는 과다한 세금에 대한 저항이었다. 오죽하면 죽음과 세금의 공통점이 국민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란 말이 나왔을까.

우리나라 정부는 1년에 325조원 정도의 돈을 쓰고 이는 대부분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무 서비스에 대한 작은 불만이 325조원 규모의 살림을 휘청이게 하는 혁명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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