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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공간에 막힌 청춘들의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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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고려대, 홍대, 한양대, 이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7개 건축학 학생들의 특별 전시회

연세대 학생들의 작품 'Living Bar'

연세대 학생들의 작품 'Living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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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치솟는 물가, 높은 집값, 등골 휘는 등록금 등 답답한 현실은 대학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원룸, 하숙집, 오피스텔 등 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의 집값만 해도 숨막힐 지경이다. 고시원, 고시텔 등 세평짜리 쪽방도 가격이 천정부지다. 현재 대학생 10명 중 5명은 최소면적기준 14㎡도 못 되는 공간에 산다.

이런 현실에 유쾌한 청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서울 7개 대학 건축과 학생들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낭만을 버리고, '현실'을 말하기 시작한 건축학도들이 12㎡의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나섰다.
10일 축제기간을 맞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캠퍼스 곳곳에는 흥겨운 대동제가 한창이다. 각종 주점과 밴드공연을 뒤로하고 중앙도서관 앞을 지나다보면 이상한 '집'들이 전시돼있다. 사방이 책장으로 트인 집이 있는가 하면 움직이는 의자가 배치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리빙바'도 있다. 겉모습은 놀이동산의 다람쥐통처럼 생겼지만 내부에는 편히 쉴 수 있는 침대와 의자가 있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총 7개의 전시 작품의 공통점은 공간 면적이 12㎡를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12㎡는 3.63평이다. 보통의 원룸형 고시원 기준으로 침대와 책상이 하나씩 들어가면 꽉 차는 넓이다. 학생들은 이 공간을 2명이 함께 산다는 전제로 작품을 꾸렸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중앙대, 홍익대, 한양대 등 총 7개 대학 건축학도들이 대학별로 5~10명이 모여 팀을 꾸렸다.

홍익대 학생들의 작품 'Fill my Windows'

홍익대 학생들의 작품 'Fill my Wind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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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2㎡일까. 이번 연합전시회를 기획한 이지웅 연세대 건축공학과 4학년 학생은 "LH에서 대학생들에게 전세금 700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 돈으로는 신촌에서 3~4평 짜리 방 하나 밖에 못 얻는 현실을 감안해 공간을 12㎡로 제약을 뒀다"며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구조방정식, 중동의 초호화 고층빌딩 등 학문적인 건축을 잠시 접어두고, 주변의 건축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지방 학생 수는 전체 45%, 그러나 대학교 기숙사 수용률은 9.6%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학생은 하숙, 원룸, 고시원에서 자취하고 있으며, 그만저도 절반은 최저생활기준에도 못미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할 대학생에겐 너무 비싸고 비좁은 우리의 집"이라는 전시회 팸플릿 문구가 눈에 밟힌다.

각 대학의 대표로 팀을 구성한 학생들은 4월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직접 부딪혀 작품을 구성했다. 그동안 수업시간에 작은 모형물만 만들다가 '나와 친구들이 살 집'을 실제 크기로 만들다보니 며칠 밤을 꼬박 새는 것은 기본이었다. 준비기간 동안 다른 팀과의 경쟁구도도 불가피해졌다. 작품뿐만 아니라 기획의도, 설계과정 등을 담은 판낼 제작에도 정성을 쏟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캠퍼스를 거닐던 학생들은 각 작품에 들어가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좁은 데서 어떻게 살아?"라며 지나가는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비좁은 데서도 자유롭고 재밌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번 전시에 참가한 학생들의 의도다. "여기가 우리집보다 낫네"라는 반응을 보인 학생도 있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작품 'lollol'

이화여대 학생들의 작품 'loll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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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바'로 전시에 참가한 김유석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생은 "가족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리빙룸'을 대학생들에 맞게 자유롭게 표현했다"며 "작품을 전시하느라 6일동안 밤을 샜다"고 말했다. 책장형 공간을 표현한 송승엽 홍익대 건축학과 학생은 "학생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사방을 책장으로 꾸미고, 주거기능에서 중요한 부문인 창문에도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각 대학 교수들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1대1 크기의 작품을 만든다는 얘기에 우려도 많이 했는데 작품들이 너무 기발하고 각 대학별 개성이 다양해 깜짝 놀랐다"며 "학교 수업에서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쉽지 않은 데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7명의 교수들은 주제, 창의성, 디자인, 경제성, 시공성 등의 5개 부문에 점수를 매겨 전시가 끝나는 12일 1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지웅 학생은 "각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이 이렇게 같이 모여서 전시를 한 것이 거의 처음있는 일"이며 "앞으로 각 대학가의 현황이나 이슈 등 주제에 맞춰 매년 열리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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