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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나의 캐디편지] '취중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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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술을 드시고 오셨나봅니다.

그리고 카트에 오자마자 이내 다음 그늘집을 물어보십니다. 도통 골프에는 관심이 없는 고객입니다. 오로지 정종과 막걸리만 찾으십니다. 얼굴은 이미 불그레해졌고 몇 홀이 지나자 페어웨이가 일어나 덤빈다고 하실 정도로 취기가 오르는 모양입니다. 카트에는 술병이 쌓여가고 고객께서는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나씨, 나 골프 못 치겠어." "그래도 이왕 나오신 거 좀 더 치다 가셔야죠."
대답이 없길래 카트 안을 들여다보니 어느 새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그 잠깐 사이에 잠이 드셨습니다. 대기 카트가 있는 파3홀이니 다행이었습니다. 동반자분이 욕을 하며 깨우자 그제서야 일어납니다. '술이 좀 깨셨을까?' 생각하기 무섭게 제 얼굴을 보자 갸우뚱 하시며 "음…, 이름이 뭐였더라? 하나씨인가?" "네, 한나요." "응 맞아. 한나씨."

한 홀이 지난 후 뭐 물어볼 게 있으신지 제 옆으로 다가 오셔서는 "음…, 안나씨 몇 홀이 남았지? 아니 안나씨가 맞나?" 고객께서는 자꾸 제 이름이 생각나지 않나 봅니다. "고객님, 한나예요. 한나라고요." "응, 맞아 맞아. 꼭 기억하고 있을게." 이미 골프는 물 건너 간지 오래고 고객께서 골프를 치는 건지 술이 골프를 치는 건지 모를 정도가 됐습니다.

걷기조차 힘든 고객님은 빨리 라운드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힘겹던 라운드가 끝났습니다. 물건도 대강 챙기고 비틀거리며 클럽하우스로 올라가는 고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고객님, 오늘 즐거운 라운드였습니다." 고객께서는 또 한참을 제 얼굴만 빤히 쳐다보시다가 제 이름이 기억나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아, 맞아! 이번엔 기억났어. 나나씨 맞지? 나나씨도 수고했어. 나나씨 고마워."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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