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왜 하필 토끼와 경주를 하게 되었을까? 토끼에 비해 태생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진 거북이가 토끼와 불공정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 목표 지점을 향해 달리던 토끼가 중간에 낮잠을 자는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거북이가 이길 수 없는 경쟁이었다. 만약 토끼가 거북이를 이겼다면 과연 우리들은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읽으며 기억할 것인가?
우리가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읽어온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불리한 조건에 있더라도 성실하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 즉 거북이들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태생적인 속도의 문제가 아니며 그 속도 또한 성실성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점, 그 점을 되뇌면서 말이다. 과연 그러한가?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성공이 속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오랜 기간의 숙성을 거쳐 상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늦게 나타내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경쟁 구조, 특히 교육 시스템에서는 그런 대기만성형 성공은 어려울 듯하다. 정해진 시험 시간에 맞추어 모든 문제를 재빨리 해결해내는 '인재'를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
'토끼와 거북이'는 이야기 책이라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느리게 걷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무시된 채 출발점에 선 거북이들은 '경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이미 패자로 낙인찍힌다.
경쟁의 본질은 한 명, 혹은 극히 일부만의 승리를 위해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패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경쟁 우위에 선 사람들이 행복하기만 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피라미드로 이루어진 경쟁 구조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 심지어 1등조차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언제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데서 엄습하는 불안감과 그 지점까지 달려오면서 가능한 모든 것을 희생한 데서 오는 결핍 때문이다.
경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는 무엇인지, 친구와 이웃 그리고 공통체와의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을 내면화하기 위한 모든 시간을 우리 교육은 살인적인 경쟁에 내줘버렸다. 물론 경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쟁이 필요한 만큼 협력도 필요하며, 경쟁의 축 못지않게 협력과 상생의 축 또한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
협력학습으로 성공한 핀란드의 예가 그것을 잘 드러내 준다. 물론 530만 인구, 조세부담율, 사회 구조 등에서 우리와 차이가 큰 핀란드의 경우와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경쟁 일변도가 아니라 협력 학습을 통해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점은 중요하게 참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꿈과 이웃 그리고 이 세계의 행복을 위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토끼들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경쟁 구조에 대한 대안은,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구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북이와 토끼가 함께할 수 있는 협력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빨리 뛰는 토끼의 노하우뿐만 아니라 느리게 걷는 거북이만이 느끼거나 알고 있는 지혜를 상호 공유하면서 협력하는 것,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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