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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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마흔을 넘긴 중년 여배우들이 주연으로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은 극히 드물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는 물론, TV 드라마나 연극, 뮤지컬 등 연기의 장을 모두 통틀어서 그렇다. 그들은 누구의 엄마, 할머니, 이모, 고모 등 젊은 남ㆍ녀 주인공들을 빛내주는 기능 외에는 별볼일 없는 '고만고만'한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기실 이는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메릴 스트립, 다이앤 키튼, 수잔 서랜든 등 훌륭한 중ㆍ장년 연기파 여배우들을 보유한 할리우드에서도 정작 이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의 숫자는 손을 꼽는다. 할리우드 공장은 연기는 좀 안 되도, 마스크 좋고 몸 잘 빠진 젊은 배우들이 판치는 '규격화' 된 영화들을 찍어낸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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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장편 데뷔작 '과속스캔들'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국 800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강형철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써니'는 놀랍게도 전혀 특별할 것 없는 40대 중년 '아줌마'들의 자아 찾기다. 심은경, 강소라 등 젊은 배우들이 나오기는 해도 '써니'는 온전히 유호정, 진희경, 홍진희, 김선경 등 영화에서 자취를 감췄던 여배우들의 것이다.(영화 엔딩에서는 모두가 기억하는 추억의 '그녀'가 깜짝 등장한다) 과연 강형철 감독의 승부처는 무엇이었을까? 모두들 '그때가 좋았다' 고 '착각'하는 1980년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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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그룹 '보니엠'의 히트곡에서 제목을 가져온 '써니'는 꿈 많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일곱 명의 친구들, 일명 칠공주파 '써니'가 25년 만에 다시 모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되찾는 감동의 이야기다. 당연히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성이다. 이미 충무로에선 닳을대로 닳은 구닥다리 방식이지만, 강형철 감독은 뚝심 있게 정공법으로 밀어붙인다. 여전히 TV 광고에서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할 때 사용되는 영화 '라붐'의 주제가 '리얼리티'를 비롯, 나이키 운동화, 무스와 청자켓,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 등 극 중 80년대 대표 코드들이 마구 등장한다.


꽤 효과적이다. 이 소품들은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적당히 스며들며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안긴다. 몇몇 플래시백 장면에서의 불충실한 고증과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과거 해석이 눈에 걸리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여배우들의 연기는 이를 상쇄시킨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10대 여고생들의 패싸움 장소로 희화화한 장면은 진정 불편하고 불쾌하다. "강 감독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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