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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크로노스의 미로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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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Cronos)는 그리스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족의 막내이자 지도자로 '시간의 화신'이다. 그는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황금시대를 다스렸으며, 그 역시 자신의 아들 제우스를 주축으로 한 올림푸스 신들의 반란으로 오랜기간 동안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제우스에 의해 타르타로스에 감금되는 처지가 된다.

타르타로스는 지하의 명계(冥界) 가장 밑에 있는 나락(奈落)의 세계를 의미하며, 지상에서 타르타로스까지의 깊이는 하늘과 땅과의 거리와 맞먹는다고 한다.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는 마침내 미로(迷路)에 갇히게 됐으니,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조절하는 초월적 능력이 세상 밖으로 추방된 셈이다.
'시간의 미로'에 갇힌 우리들은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까지 절대적인 시간 속에 갇혀 살아왔다. 크로노스를 타르타로스의 깊은 심연 속으로 추방시켰던 상대적 시간이 이렇듯 오랜 세월이 흐르고, 양자물리학에 의해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개념을 과학이론의 틀에서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되찾게 됐다. 우리의 일반적 삶은 물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시간에 속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인류의 의식과 사고, 삶의 방향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양자물리학은 하나의 비유로 받아들여지던 장자의 '나비의 꿈'을 해석하면서도, 짧은 꿈에서 자신이 겪지 못한 인생을 모두 살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 시간의 개념 속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교환과 병치라는 개연적 관계를 통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실증적 대상으로 파악하게 만들었다.

현대인들에게 인식 가능한 시간의 개념은 공간의 개별적 차이에 의해 형성될 수 있으며, 절대적 시간은 상대적 시간으로 탈바꿈이 가능해진다. 우주여행을 가는 '나'와 지구에 머무는 '나'의 상대적 시간의 개념은 여행에 걸린 측정 가능한 절대 시간의 차이에 의해 여행궤도와 거리 및 속력에 따라 상대적 차이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제우스의 반란으로 타르타로스에 감금된 크로노스가 자유를 얻어 자신의 황금시대를 부활시켜 시간의 상대성을 복원시킨 의미와 비교된다.
하늘과 땅, 지하세계를 모두 정복한 제우스 이전 시대로의 회귀는 우주의 본질에 가깝게 살았던 시대였다.

현재의 질서 체계의 한계를 인식하는 인간들의 의식 속에는 원형적 이데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적 욕망이 담긴다. 무질서와 혼란, 어둠뿐인 카오스(chaos)에서 우주 탄생이 시작된 이후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로 남성도 여성도 구분되지 않던 중성적 상태인 카오스는 가이아, 에로스(eros)를 출현시켰고, 세상은 남성적 입자(+)와 여성적 입자(-)의 결합에 의한 온갖 만물의 탄생이 이어졌다.

물리적 시간의 개념에 의한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에서 얘기하는 상대적 시간의 개념이 신화의 세계에서 이미 자유로운 삶의 상대적 시간관이었던 셈이다.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조정하고,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을 상대적 시간의 개념 속에서 연장할 수 있는 현대 양자물리학의 성과는 미로 속에 갇혀 절대적 시간으로 제한된 시간의 흐름을 살아야 했던 크로노스가 황금시대 시간의 상대적 시간관으로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시간의 제한된 공간 속에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성에 대한 염원과 과학적 호기심은 시간의 고금을 넘어 가장 본질적인 사고 대상이다.



우성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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