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소년, 패미컴을 만나다
국내에서 가정용게임 시장이 활성화 된 것은 초창기 아케이드게임의 급부상과 그 시기를 같이 한다. 비디오게임 초창기 우리는 왜 푼돈을 모아 패미컴을 샀던가. 아마 오락실의 재미있는 게임들을 집에서 ‘공짜’로 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필자의 경우는 그걸 기대했으나 패미컴이 아케이드게임의 수준을 한참 밑도는 것을 알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패미컴의 스팩으로는 아케이드게임의 급진적인 진보를 따라갈 수 없었지만 가정용게임은 오락실에서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사람들에게 안겨주었다. 액션, 슈팅 일색의 단기적인 재미가 아닌, 키우고 모험하고 머리를 통해 생각하는 지적게임의 새로운 재미와 그로 인한 게임의 다양성을 유저들에게 선보였다.
어린 시절 게임샵에 팩을 교환하러 갔을 때 게임샵에서 홍보용으로 켜놓은 이상한 게임을 발견했는데, 이건 그때까지 알고 있던 게임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픽은 밋밋하고 캐릭터는 느릿느릿 기어다니며 이상한 꼬부랑글씨가 줄줄 올라와 어린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잠시 지켜보다 이내 든 생각 ‘저딴 걸 뭔 재미로 하지’.
아마 드래곤퀘스트 초기 시리즈였을 것이다. 그 당시 RPG가 국내에서 그다지 대중적 장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게임샵에서 틀어놓을 정도였으니, 일본에서 '사회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유행한 게임었기에 시험삼아 틀어놓은 것 같다. 아마 물량을 대주던 보따리상이 일본에서 대박난 게임이라며 팔아보라고 추천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시큰둥하던 꼬마가 얼마 후 RPG, 시뮬레이션에 환장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아케이드게임에 길들여진 필자의 게임관에선 이건 감히 게임이라 불러서는 안 되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종류였기 때문이다.
가정용 비디오게임업계는 보통 지속적인 3강 구도를 띠고 있어 그에 따른 경쟁관계도 또다른 재미를 줌과 동시에 서로 경쟁함으로써 업계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시기적으로는 아타리가 닌텐도와 세가에 밀려난 80년대 후반 NEC가 허드슨과 같이 PC엔진을 출시함으로서 세가, 닌텐도, NEC가 초기 구도를 잡아갔다. 국내에서도 게임사업의 흥행성을 감지하고 삼성의 겜보이(마크3) 시리즈, 현대에서 컴보이(패미컴) 시리즈, 대우 재믹스(MSX, pc엔진) 시리즈, 해태 바이스타(pc엔진) 등 전자계열 기업들이 게임기 시장에 진입했으나, 보따리상들의 저가 물량공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약화와 북미판 기반의 소프트웨어 호환성 문제로 8비트, 16비트 시장에 발을 걸쳐보려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가정용게임기의 새로운 재미를 알려주고 시장을 확대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PC잡지, 게임잡지였다. 게임산업의 성장흐름을 파악한 PC잡지에서는 게임뉴스, 정보를 서서히 수록하기 시작했고 게임전문 잡지들도 연이어 창간되었다. 이를 통해 외국어를 모르는 국내유저들이 액션, 슈팅, 스포츠 외에도 재미있는 게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 전문잡지들이 없었다면 현재 국내의 게임산업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이전 비디오게임을 다뤘던 잡지로는 PC게임뉴스(이후 게임뉴스로 제호변경), 게임월드, 게임챔프(이후 게임파워로 제호변경),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이 유명했으며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이머즈도 있다. 당시 게임잡지는 유일무이한 지식 전달자였으며 업계의 스승이었기에 그 지식과 전문성에 감탄한 필자가 차후 게임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리 이상하진 않으리라.
온갖 지렁이체 글씨가 기어다니는 정체불명의 게임처럼 보였던 RPG,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잡지의 설명과 공략을 보고나니 완전 대박 재미있는 게임으로 돌변했다. 비싼 돈 주고 샀더니 얼마하지도 못하고 금세 질려버리는 액션, 슈팅게임과는 격이 달랐다.
드래곤퀘스트 시리즈로 RPG붐이 일어난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파이널판타지3가 RPG로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실제 국내에서는 파이널판타지를 먼저 해본 뒤 드래곤퀘스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커먼 화면에서의 불빛효과와 흔들림, 텍스트로만 이루어지는 드래곤퀘스트의 전투화면에 비해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전투화면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서양에서도 드래곤퀘스트보다는 파이널판타지쪽이 좀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파이널판타지나 드래곤퀘스트만은 아니다. 당시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만화 드래곤볼이 카드배틀시스템을 차용한 동명의 게임으로 발매되어 이 또한 큰 인기를 끌었고 대백과 시리즈로 국내에 친숙했던 건담, 로봇류의 게임들도 액션은 물론 시뮬레이션 장르의 재미를 유저들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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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의 마크3는 기업 특성상 액션, 슈팅게임에 좀 더 힘이 실렸다. 기껏해야 판타지스타 정도가 RPG의 명목을 유지했기에 가정용게임만의 장점을 살렸다기보다는 아케이드게임의 퀄리티를 집에서 즐기고 싶다는 유저에게 좀 더 어울리는 게임기였다. 차후 판타지스타는 삼성에서 국내 정식발매로 무려 한글화가 되어 출시되기도 했다. 물론 엄청난 뒷북 출시라 당시에는 “출시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이러심 곤란”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힌 국내 비디오게임유저들을 위해 애쓴 점은 눈물 흘리며 박수쳐줄만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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