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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의 건축외전⑤]미술관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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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양 승 열(楊 昇 烈). 울산에서 성장하며 조그만 공단도시가 인구 100만 명의 광역시가 되는 과정을 보고 자랐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도심활성화를 주제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소속으로 용산역세권개발 설계단에서 일하고 있다. "문명은 3가지 요소로 이뤄졌다. 진 truth 선 goodness 미 beauty 이는 곧, 과학 science 윤리 ethics 예술 art 이다. 이 모든 것은 일상 언어다"라는 말을 기억해 내고는 일상 언어로서의 건축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철판 위에 도장한 철 구조물로 22m 높이의 규모이다. 광화문 흥국빌딩의 미술장식품으로 2002년에 설치되었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철판 위에 도장한 철 구조물로 22m 높이의 규모이다. 광화문 흥국빌딩의 미술장식품으로 2002년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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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서 공공으로

건축물은 단순히 소유자만의 것이라는 등식(等式)은 성립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내 땅에 내 돈을 들여 짓는 것이기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를 생각하면 입장은 달라진다. 건축물이 너무 높이 올라가면 하늘을 가려 다른 건물에게 음지를 제공하게 된다. 난잡한 주차계획은 교통 체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위험한 구조물로 인해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소유권과 소유권이 붙어있는 아파트는 이웃 간 불화가 더 자주 생긴다.

이렇듯 건축은 개인의 이익과 공공을 위한 배려라는 두 가지 난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어떠한 사회든, 그곳을 유지하기위한 최소한의 제도를 갖추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의범절이나 입법기관에서 제정한 성문법(成文法)은 공동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대규모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서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위화감을 주며, 다소 삭막한 건조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여 도시민의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공개공지나 조경 등의 설치 조항이 건축법에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품을 통한 도시 공공성을 목표로 하는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할 때 건축비용의 1% 이하를 미술장식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도심에서 예술의 활성화와 도시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현재 한국의 도심 곳곳에는 1만개가 넘는 공공미술품이 전시돼 있으나, 우리 일상에서 기억되고 사랑받는 미술품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제도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법에 명명된 그 목적을 최소한으로 지킨 도심의 조각물들은 공공미술을 활성화한다기 보다는 건물 앞의 껌 딱지라는 오명을 가진 채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

망치질하는 사람

처음에는 권장사항이었던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는 1995년 의무조항으로 변경돼 양적인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에 반해 관계자들의 이해부족으로 본래 취지에 부합되지 못하거나, 브로커를 통해 시장을 독식하는 몇몇 작가와 리베이트(rebate) 문제로 도시환경 개선에 실제적인 기여가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제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운영관리와 시행의 투명성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좋은 선례를 남긴 작품으로 서울 신문로에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스케치,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크고 단순한 형태의 거인이 묵묵히 노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스케치,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크고 단순한 형태의 거인이 묵묵히 노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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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하는 사람’은 미술장식 제도가 헛돈을 들게 만드는 규제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미술장식품이 아닌 공공미술로 건물 홍보와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적극 활용한 사례다.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우뚝 서서 오늘도 열심히 망치질하는 사람은 미국의 설치 조각가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연작중 하나다. 초현실적이고 몽상적인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 인정받아 ‘노래하는 사람(Singing Man)’, ‘걷는 여자(Walking Woman)’,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Walking to the Sky)’ 등 한국에 여러 점 들어와 있다. 1분 17초 간격으로 망치를 쥔 오른손을 천천히 반복해서 내려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찬가’라고 작가는 말한다. 대중에게 이해되기 쉽고 간결한 그의 작품은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수작이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거리 한 모퉁이에서 매일같이 수만 명이 지나치며 보게 되는 작품이자, 우리의 자화상이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거리 한 모퉁이에서 매일같이 수만 명이 지나치며 보게 되는 작품이자,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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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 서있는 이 거인은 관람자를 압도하는 크기와 강렬한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첫인상을 뒤로하고 지나칠 때마다 찾아보게 되는 거인은 곱씹을수록 현대사회의 고독과 노동의 의미가 우러나온다. 해외 유명 작가의 가장 크고 비싼 작품이라는 정보를 알기 전에, 좋은 작품은 보는 사람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다. 근래에 이 거인이 ‘서울 시민에게 더 가까이’라는 슬로건 아래 한발자국 걷는 사건이 있었다.

도시 경관과 좀 더 완벽하게 상호작용하기위해 거리 쪽으로 한걸음 이동한 것이다. 애당초 이 거인의 설치 구상은 대로변에 최대한 가까이 두고 발 아래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보는 조각품이 아니라 지나치며 만져지는 대상으로 계획된 것이었으나 대지 경계선 안쪽에 있어야 하다 보니 건물 옆에 옹색하게 붙어 있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설치되는 장소가 협소해 포용하지 못하면 그 의미는 반감된다.

다행히 건물주가 비용을 대고 서울시가 행정적인 지원을 하여 ‘망치질하는 사람’은 제자리를 찾았다. 한번 만들어진 구조물을 고쳐 쓰는 것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한다는 교훈과 함께 오늘도 망치질하는 사람은 열심히, 아주 열심히 노동의 숭고함을 몸소 대변하고 있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대지경계선 안의 사유지에서 인도로 한 발짝 걸어 나와 사람들에게 더 친근한 공공미술이 되었다.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 대지경계선 안의 사유지에서 인도로 한 발짝 걸어 나와 사람들에게 더 친근한 공공미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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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갤러리

공공미술은 미술관이나 화랑이라는 한정된 장소에 전시되는 작품과 달리 도시민의 접근이 쉬운 장소에 설치되어 일상으로서의 예술을 표방한다. 각박한 도시환경에 자극을 주고 문화적 교양을 키우는 일이다. 좋은 작품을 품에 안고 지내도 좋겠지만 거리를 걸으며 마주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옆에 새 건물이 생기면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장식품이 생겼다. 이름하여 디지털 아트 캔버스라는 것이다. 일종의 아트마케팅 의도가 있었겠지만 밤이 되면 아름답게 빛나는 발광다이오드(LED) 소자들은 서울광장이나 덕수궁 쪽에서 더 잘 보인다. 이 LED 캔버스는 26개의 타이포그래피 영상 작품이 바뀌면서 야경을 연출하는데, 지난해 12월31일 밤 남산에 오른 사람들은 신년 카운트다운 쇼를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LED 캔버스, 이정교,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건물의 뒷면에 발광다이오드(LED) 소자 6만 9,000개로 이루어진 디지털 아트 캔버스

LED 캔버스, 이정교,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건물의 뒷면에 발광다이오드(LED) 소자 6만 9,000개로 이루어진 디지털 아트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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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감한 시도는 안정적인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한 금액 이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의 확보가 부동산의 가치를 끓어 올리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개발회사도 있다. 직접적인 효과 외에도 무형의 홍보 효과는 이미 일반화 되었다.

폭스바겐이라는 자동차 회사는 놀이 이론을 접목한 참신한 아이디어로 주목을 끌었다. 스톡홀름 지하철역 계단을 피아노 모양으로 바꾸고 밟을 때 소리가 나게 한 것이다. 이 간단한 원리를 통한 재미있는 생각은 사람들의 행동을 더 활발하게 바꾸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호기심어린 놀이로 인해 에스컬레이터보다 피아노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다.

피아노 계단, 조각이나 미술품 형태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에 더 친근한 방법으로 도시를 재미있게 만들었다.

피아노 계단, 조각이나 미술품 형태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에 더 친근한 방법으로 도시를 재미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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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걷다.

도시 디자인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어쩌면 아주 특별한 것을 먼저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계획과 많은 시 예산이 소요 될 것으로 지레짐작한다. 서울 어는 지하철역에 재미있는 계단이 있다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지겹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업체의 후원을 받으면 시 예산 없이 도시를 활기차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딱딱하게 생각하면 법과 제도는 지켜야만 하는 제약(制約)이겠지만, 이들과 친해지면 또 다른 가능성을 열수가 있다. 미술장식품 설치 대상인 건물의 주인은 미술품 설치를 완료해야만 새로 지어진 건축물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제도를 강화하여 작품의 심의와 실행의 투명성을 확보하면 도시는 더 좋은 작품을 가지게 된다. 비용이 문제라면 기금으로 비축하였다가 많은 금액이 모였을 때 사용 할 수도 있다.

서울 도심에만 2,500개가 넘는 작품들이 건물마다 옹색하게 붙어있다. 건물 입구에 문패처럼 붙어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인접 건물 사이에 공동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수준 높은 미술품이 전시된다면 서울의 어느 미술관 보다 큰 거리 미술관이 생긴다.

제도는 피해가야 하는 필요악(必要惡)이 아니라 활용하기에 따라 도시를 활기차고 기분 좋게 만드는 약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도시를 문화적으로 디자인 하겠다는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 진행하여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도의 문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취지와 목적을 해석하면 더 좋은 도시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곧, 도심생활 속에서, 거리에서, 미술관을 걷는 꿈을 꾼다. 이런 꿈은 돈보다는 우리의 의지와 재치 있는 생각 속에 있다고 믿는다.

사진 출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 http://www.borofsky.com/
피아노 계단(Piano Staircase) : http://www.thefuntheory.com/




양승열 painter_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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