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일하는 사람의 초상' 나란히 출간
평범한 직업에서 길어 올린 '노동의 표정'
밥이 먼저다. 사람이 왜 일을 하는지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밥 앞에 닿는다. 내 밥, 가족의 밥, 타인의 밥. 누군가는 1700인분의 급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배달 가방을 메고 도시를 가로지르며, 또 누군가는 비행기의 안전을 점검하고, 아픈 마음과 쇠약해진 몸을 돌본다. 일은 거창한 자기실현 이전에, 먼저 밥의 문제다. '밥벌이'는 오래되고 투박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이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 담겨 있다.
최근 출간된 '생업'과 '일하는 사람의 초상'은 바로 그 밥벌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두 책 모두 작가 자신의 직업 세계를 고백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신 작가들이 직접 일터로 가 다른 사람들의 일을 묻고 들은 기록이다. 책의 주인공은 유명인이 아니다. 급식 노동자, 배달 노동자, 요양보호사, 청소 노동자, 치과기공사, 구급대원, 항공정비 검사원, 공인노무사, 사회복지직 공무원 같은 사람들이다. 흔히 평범하다고 불리지만, 사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은유의 '생업'은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생업.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다. 생계를 잇는 업이고, 몸으로 버는 밥이다. 은유는 1년 6개월 동안 노동자 17명을 만났다. 급식 노동자, 청년 농부, 배달 노동자, 타투이스트, 배우, 가수, 유튜버, 요양보호사, 청소 노동자, 노동 변호사, 산재 피해 유가족, 국어 교사, 심리 상담가 등이 등장한다. 책은 이들을 '먹이는 사람', '짓는 사람', '아우르는 사람'으로 나눈다. 직업 분류라기보다 삶의 방향에 가까운 구분이다.
이 책에서 밥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인터뷰의 방식이고, 관계의 윤리다. 은유는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말을 듣는다. 밥상은 취재 테이블이 아니라 서로의 생을 잠시 맞대는 자리다. 급식 노동자는 "돈 벌려고 오지만 책임감으로 일하죠"라고 말한다. 배달 노동자는 자신의 일을 "아주 정직한 노동"이라고 부른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불편함이 "나를 먹여살리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말들은 노동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이 얼마나 징하고, 그래서 얼마나 찡한지를 보여준다.
'생업'의 인물들은 자주 지쳐 있다. 그러나 무너지기만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기 일을 통해 누군가를 먹이고, 돌보고, 이동시키고, 위로하고, 싸운다. 은유는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세우지 않는다. 피해의 언어로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가 붙잡는 것은 노동자의 떳떳한 표정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얼굴. 그 얼굴에는 자부심과 체념, 분노와 유머, 고단함과 존엄이 한꺼번에 얹혀 있다.
'일하는 사람의 초상'은 같은 자리에서 조금 다른 길을 간다. 이 책은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14인이 한겨레에 연재한 직업 인터뷰 중 30편을 추린 논픽션 앤솔러지다. 월급사실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소설가 동인이다. 이들이 이번에는 허구의 인물을 만드는 대신 실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소설가들이 상상력의 방 안에 머물지 않고 직업의 현장으로 걸어간 셈이다.
'일하는 사람의 초상'에는 치과기공사와 중식당 면장,리서치 조사원, 고공로프 용접기사, 119안전센터 구급대원, 항공정비 검사원, 임상심리 전문가, 면역전문 간호사, 산부인과 의사, OTT 큐레이터 등이 등장한다. 사진은 119안전센터 구급대원. 소방청
원본보기 아이콘책은 '만들다', '잇다', '지키다', '살피다' 네 부로 짜였다. 치과기공사와 중식당 면장, 올리브오일 생산자, 촬영감독, 라디오 PD, 공인중개사, 리서치 조사원, 고공로프 용접기사, 119안전센터 구급대원, 항공정비 검사원, 임상심리 전문가, 면역전문 간호사, 산부인과 의사, OTT 큐레이터 등이 등장한다. 이 목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 지도처럼 읽힌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직업들의 지도다.
이 책의 힘은 세부에 있다. 치과기공사는 "입안 감각은 절대 숫자로 못 읽어요"라고 말한다. 촬영감독은 배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한다. 구급대원은 해결하기 좋은 사건과 나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해결해야 할 사건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직업은 여기서 직함이 아니다. 손끝에 남은 감각, 반복된 판단, 오래 버틴 사람만이 아는 질서다. 소설가들은 그 세부를 놓치지 않는다. 좋은 소설이 인물을 단번에 설명하지 않고 사소한 행동으로 드러내듯, 이 책은 직업을 추상명사가 아니라 몸의 습관으로 보여준다.
두 책은 모두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러나 평범함이라는 말은 이 책들 앞에서 조금 무력해진다. 평범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고액 연봉, 전문직 명함, 금메달 같은 사회적 물증이 없다는 뜻이라면 이들은 평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 노동자의 권리, 돌봄과 책임이라는 척도로 보면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 밥을 짓는 사람, 남의 몸을 씻기는 사람, 비행기를 점검하는 사람,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사람,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회의 배경이 아니다. 그들이 빠지면 하루는 곧장 삐걱거린다.
차이는 있다. '일하는 사람의 초상'이 직업의 세부를 넓게 펼친 책이라면, '생업'은 노동자의 생애를 깊게 파고든 책이다. 전자는 여러 명의 소설가가 각자의 문체와 시선으로 직업의 세계를 그린다. 덕분에 책은 다성적이다. 어떤 글은 인터뷰처럼, 어떤 글은 산문처럼, 어떤 글은 짧은 소설처럼 읽힌다. 반면 '생업'은 은유라는 한 명의 인터뷰어가 끝까지 듣고 기다리는 책이다. 질문은 낮고, 문장은 오래 머문다. 한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살아온 시간과 엮일 때까지 성급히 정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일'이라는 단어의 폭이 달라진다. '일하는 사람의 초상'에서 일은 기술과 책임의 이름이다. 어떤 일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감각으로 유지되고, 어떤 일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안전을 확인하는 반복으로 지탱된다. '생업'에서 일은 생존과 관계의 이름이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타인을 살피고, 공동체를 부축하고, 부당한 세계와 싸우는 일이 된다.
중요한 것은 두 책 모두 일을 성공담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자기계발식 문장이 없다. 대신 좋아하지만 계속하기 힘든 일, 좋아하지 않아도 그만둘 수 없는 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멈추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노동자의 선의에 기대어 굴러가는 일도 있고, 안전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책임감이 구조의 빈틈을 메우는 일도 있다. 두 책이 조용히 묻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왜 사회는 필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꾸 선의를 요구하는가."
한 그릇의 밥을 중심으로 급식 노동자, 배달 노동자, 항공정비사, 요양보호사, 청소 노동자, 구급대원 등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이어진다. '생업'과 '일하는 사람의 초상'은 우리가 매일 기대어 살면서도 오래 보지 않았던 노동의 얼굴을 다시 불러낸다.
원본보기 아이콘문학이 일터로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직업 정보를 수집한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사람을 보려 했다. 다만 지금의 작가들은 그 사람을 일터에서 다시 본다. 무엇을 사랑하는가보다 무엇을 견디는가. 어떤 꿈을 꾸는가보다 어떤 일을 반복하는가. 어떤 실패를 했는가보다 어떤 책임을 끝내 놓지 않는가. 한 사람의 진짜 얼굴은 때로 취향보다 생업에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런 점에서 '생업'과 '일하는 사람의 초상'은 직업 인터뷰집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측면도다. 정면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옆에서 보면 드러난다. 식판 위의 밥, 배달 가방의 무게, 치아의 곡면, 비행기 정비 기록, 요양원의 하루, 콜을 받고 출동하는 구급대원의 몸. 거기에 지금 한국 사회가 유지되는 방식이 있다. 거창한 구호보다 정확한 현장이다.
두 책이 남기는 감각은 비슷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노동을 투명하게 지나쳐왔다. 청소된 바닥은 보지만 청소한 사람은 보지 않았고, 배달된 음식은 받지만 달려온 사람은 금세 잊었다. 병원과 학교와 아파트와 지하철과 식당과 플랫폼은 매일 작동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표정은 자주 지워졌다. 두 책은 그 지워진 표정을 다시 불러낸다. 이름을 붙이고, 말을 듣고, 손의 감각과 몸의 시간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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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는 남루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가장 정확한 말이다. 밥을 벌고, 밥을 짓고, 밥을 나누고, 남의 밥줄을 지킨다. '생업'과 '일하는 사람의 초상'이 보여주는 노동의 세계는 그 안에 있다. 작가들이 일터에서 길어 올린 것은 직업 정보가 아니라 얼굴이다. 우리가 매일 기대어 살면서도 오래 보지 않았던 얼굴. 그 얼굴을 보고 나면, 내 앞의 밥 한 그릇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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