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 여파…산업부 무역 핵심업무도 차질
전략물자 수출 심사·무역행정 지연
임시 조치로 수기·팩스·이메일 운영 전환
"신속 복구 요구했지만 우선순위 밀려"
기재부 dBrain+·e나라도움은 정상 가동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센터 화재 여파가 산업통상자원부의 핵심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면서 산업·통상 현안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일 전산센터 장애가 곧바로 통상 당국의 대외 신뢰와 기업 현장에 영향을 주는 현실이 드러나면서, 국가 디지털 행정 체계의 취약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29일 산업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산업부 및 산하기관이 운영하는 총 21개 서비스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국민 서비스가 11개, 내부 행정 시스템이 10개다.
특히 전략물자 수출 심사, 불공정 무역행위 사건 접수, 각종 인허가 처리 등 민감한 기능이 포함돼 있어 파급력이 크다. 산업부는 긴급 조치로 온라인 신청은 수기 접수로, 결과 통보는 서면·팩스 방식으로 전환했다. 전략물자 수출 심사 역시 전용 플랫폼 대신 이메일 접수로 임시 운영에 들어갔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략물자 심사와 무역 행정은 국가 안보와 기업 활동 모두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라 복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전체 정부 서비스 복구 과정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접수 채널이 바뀐 것 같지만 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전략물자 수출 심사는 반도체 장비, 정밀 기계, 방위산업 부품, 첨단 소재 등 국제적으로 민감하게 분류된 품목의 수출 여부를 판정하는 절차다. 통상 하루이틀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고 서류 검토와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허가증이 발급된다. 이 과정이 지연되면 해외 납품 일정에 직접 차질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억 원 규모의 계약이 흔들릴 수 있다. 한 수출기업 관계자는 "전략물자 허가증이 늦어지면 해외 고객사가 '한국에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라고 묻는다"며 "기업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납기 지연 책임은 결국 기업이 떠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공정 무역행위 사건 접수·처리 지연 역시 민감한 문제다. 산업부는 외국의 덤핑, 보조금, 지식재산권(IP0 침해 행위에 대응하는 주무 부처다. 이런 사건의 처리 속도는 국제 분쟁 대응력과 직결된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건 접수부터 조사, 종결 통보까지 종이 문서와 팩스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는 절차적 투명성과 신속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한국은 미국과 자동차·철강, 유럽연합(EU)과 환경규제 등 통상 현안을 동시에 안고 있는 상황이다. 시스템 지연이 장기화되면 기업 민원 처리와 정부 대응 모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국가 재정 관련 시스템은 정상 가동을 재개했다는 점이다. 국가재정정보시스템(디브레인·dBrain+)과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 등 주요 대민 서비스가 28일 오후 4시부터 정상적으로 가동됐다.
열린재정, e나라재산, 국세외수입 포털 등도 함께 복구돼 국고금 수납, 자금 이체 등 월말 재정 집행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설명했다. e나라도움 역시 금융인증서, 일회용 비밀번호(OTP) 등 다양한 접속 방식이 정상 지원돼 보조금 집행 업무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기재부 홈페이지를 비롯한 일부 내부 결재·인증 시스템은 아직 접속이 불가능해 복구에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29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우리 부 홈페이지와 영문 홈페이지, 어린이 경제교육용 홈페이지, 복권위원회 홈페이지 등이 여전히 접속 불가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디브레인의 내부 결재 시스템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자체 이중 인증(ID·PW+OTP)과 자체 결재 시스템을 활용해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는 임시 조치를 마련했다. 한국재정정보원은 이날부터 고객상담센터의 운영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연장해 이용자 불편을 덜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국가 전산망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가 많다. 국가 주요 부처의 핵심 행정 서비스가 사실상 하나의 전산센터에 집중돼 있었고, 이중화와 분산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정부가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기반 행정을 강조해온 것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백업·재난복구 체계가 허술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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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현재 복구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647개 중단 서비스 가운데 일부는 정상화됐지만 산업부 업무는 여전히 임시 운영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당장 기업 피해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복구 지연이 길어질 경우 납기 차질과 행정 지연에 따른 파급효과는 현실화될 수 있다. 산업계는 물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단순 복구로 끝낼 것이 아니라 국가 전산망 전체에 대한 근본적 재점검과 보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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