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
<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3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혁신 비결을 정리한 콘텐츠입니다. 글로벌 취재 현장에서 느낀 현대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소를 그대로 전달해드립니다.


현대차는 왜 BD를 인수했나
현대차그룹은 2021년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BD)를 인수했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보유했던 지분의 80%를 인수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투입한 자금만 약 1조원. 여기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재도 포함됐습니다.
정 회장이 개인 자금까지 쏟아부으며 BD를 인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빠르게 성장하는 로보틱스 시장에서 BD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로봇 하드웨어 분야에서 업계 1위의 독보적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인수 당시 BD는 공중제비돌기, 경사진 징검다리 건너기, 점프해 건너뛰기 등을 자유자재로 하는 민첩한 운동 능력을 보여주는 로봇 영상으로 유명했죠. 로봇의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고성능 액추에이터와 제어 능력, 정교한 센서, AI를 통한 사물인식 능력을 실시간 조합하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BD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현대차그룹은 미래 로보틱스 시장의 성장을 예견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정 회장은 BD를 인수하기 전 2019년 타운홀미팅에서 그룹의 향후 매출 비중을 자동차 50%, 도심항공교통(UAM) 30%, 로보틱스 20%로 채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미국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BD 인수 후 현대차그룹이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미국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주는 일이었습니다.
BD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매사추세츠주는 400여개의 로봇 회사와 70여개의 연구기관(R&D)이 모인 글로벌 로보틱스 R&D의 허브입니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로봇 관련 인재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데요. 일반적으로 한국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하면 한국식 기업문화를 이식하려 애를 쓰는데, 이는 수직적이고 조직 중심의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해외 인재의 이탈을 불러올 위험이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 같은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현대차그룹 글로벌 소프트웨어 센터인 포티투닷이 해외 지사를 세워 전 세계 소프트웨어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UAM 개발 부문인 수퍼널이 미국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이유도 모두 같은 방침에서입니다.
BD는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분야를 담당하는 글로벌 R&D 거점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앞으로 BD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양산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낼 전망입니다.
車 제조사들이 로봇 투자 나선 이유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 현장에 도입하고, 한발 더 나아가 로봇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등 직접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테슬라도 자사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를 개발 중이며, BMW는 미국 스타트업 피규어AI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 02'를 미국 공장에 투입해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는 미국 로봇 기업 앱트로닉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이 회사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을 독일 디지털 팩토리와 헝가리 공장에서 시험 운용 중입니다.
중국 업체는 더욱 적극적입니다. 중국 광저우자동차그룹(GAC)은 지능형 휴머노이드 로봇 '고메이트'를 지난해 공개하고 올해부터 여러 산업 분야에 적용하고 있으며, 지리자동차그룹(Geely)은 중국 휴머노이드 전문기업 유비테크와 협력해 '워커 S' 로봇 시리즈를 고급 브랜드 지커 공장에 투입했습니다. 샤오펑도 자체 개발한 '아이언' 로봇을 2024년부터 전기차 생산 공정에 투입해 현장에서 운용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생산 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하는 이유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이미 글로벌 자동차 생산 공장은 이미 상당한 자동화를 이룬 상태인데, 완성차 공장 중에서 가장 자동화율이 높다는 테슬라의 상하이 기가팩토리 자동화율은 무려 95%입니다. 이미 로봇이 생산 현장에 투입돼 사람의 손길이 거의 필요치 않다는 얘기죠.
하지만 남은 5%가 숙제입니다. 마지막까지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 5%의 공정은 주로 의장 공정에 몰려 있습니다. 의장 공정은 차량에 문, 시트, 내장재, 전장부품, 배선 등 약 3만여개의 부품을 조립하는 단계로, 차종과 옵션에 따라 장착하는 부품의 경우의 수가 수만 가지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또한 의장 부품은 크기나 형태, 조립의 순서 등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작업자의 고도화된 판단 능력이 요구됩니다. 작은 부품이 많고 조립의 결합 강도나 단차에 따라 최종 품질과 직결되기 때문에 세심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 손처럼 작은 부품까지 집어 올릴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마지막 과제인 의장 공정의 완전 자동화까지 달성하게 되면, 자동차 제조사는 원가의 10%에 달하는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영업이익률이 최대 1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원가의 10%는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노사·관세 리스크 해법으로
100% 자동화를 이루면 제조업체는 노사 리스크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로봇은 임금 인상이 필요 없고 파업으로 인한 생산 중단 손실도 없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선 노조와 협의 없이도 공장 가동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주말과 야간 가동을 포함해 24시간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이 때문에 전통 자동차 업체들은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도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에 적극적입니다. 인건비 절감은 중국 업체와의 원가 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핵심 카드이기 때문이죠.
로봇 도입을 통한 인건비 절감은 관세 리스크도 줄여줍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신흥국 위주로 전 세계에 생산 기지를 세운 이유도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입니다. 인건비가 저렴한 신흥국에서 부품 또는 완성차를 만들어 선진국으로 수출하면 제조업체는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지만, 최근 이 같은 공급망 밸류체인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면서 미국으로 향하는 완성차와 부품에 관세 장벽을 높게 쌓아 올린 탓입니다.
과거 자동차 시장의 글로벌 생산 기지는 중국이었습니다. 낮은 인건비로 중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미국과 유럽 공장으로 보내고, 최종 조립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제 미국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완성차와 부품에 15%의 관세를 물리면서 이 같은 공식은 깨졌습니다. 중국엔 이보다 더욱 높은 관세를 예고하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부품 산업도 공급망 재편이 필요해진 것이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 주지사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통한 인건비 절감으로 10%의 원가를 줄일 수 있다면 굳이 생산 공장을 신흥국에 지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미국에서 파는 차는 미국 공장에서, 유럽에서 파는 차는 유럽 공장에서 생산하면 인건비뿐만 아니라 물류·운송 비용도 줄어듭니다. 이 같은 생각에서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빠른 시일 내 휴머노이드 로봇의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삼성증권이 분석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간당 유지비용은 3.4달러 정도입니다. 대당 10만달러인 로봇을 5년간 24시간 공장에 투입한다고 가정하고 여기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FSD) 구독, 배터리 교체를 포함한 각종 유지비를 포함한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시간당 인건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글로벌 컨설팅업체 올리버 와이먼이 발간하는 하버리포트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제조사의 평균 차량당 인건비는 585달러입니다. 여기에 차량 1대에 투입되는 총 노동시간을 160~190시간으로 가정해 나누면, 시간당 드는 인건비는 3.6~3.7달러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시간당 3.4달러)을 투입하면 중국 생산과 비슷하거나 인건비가 더 적게 든다는 결론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성공 요인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은 성공 요인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로봇이 상용화되면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수요처가 확실합니다. 현대차· 기아 해외공장에 우선적으로 투입하며 국내 공장 도입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고, 현재 동맹을 맺고 다양한 생산 전략을 함께 논의하고 있는 GM, 그리고 BD와 AI 로봇 공동 개발을 선언한 도요타까지 전 세계 공장으로 공급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현대차 그룹은 공급 밸류체인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에 휴머노이드 로봇 하드웨어의 핵심 기술인 액추에이터 개발·제조를 맡겼고, BD의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를 움직이는 핵심 칩은 엔비디아에서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또 올해 3월 BD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 '젯슨 토르'를 이용해 차세대 AI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삼성SDI와는 로봇 맞춤형 배터리를 개발합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로봇에 탑재할 수 있고 가벼우면서도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목표로 연구 중입니다. 현대차그룹은 BD의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며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자본 시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면 현대차그룹의 직접적인 투자 부담은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꾸준한 연구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신사업 성장 동력 확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