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몇 푼 더 쓰겠다고, 집을 저당 잡히는 게 말이 되냐."
아버지께 주택연금을 권했다가 얻은 답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주택연금 가입을 권했던 후배는 "다른 자식들은 집을 상속받기 위해 부모님의 주택연금 가입을 꺼린다던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주택연금은 소유한 주택을 담보로 나온 대출금을 연금 형식으로 매월 분할해 받는 상품이다. 원리금은 계약 종료 시점에 일시 상환한다. 매달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최근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안정적인 노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택연금을 선택지로 두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나 가입률은 요건 충족 가구 수의 1.89%(총 13만3364건·2024년 10월)에 불과하다. 고령 가구 중 78.2%(주거실태조사·2023)가 주택연금 가입 대상으로 꼽히는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먹을 것이 좀 부족해도 집은 지키겠다'는 것이 부모 세대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고령층의 실물 자산 보유 비중은 전체 자산 중 85.1%에 달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나라는 이탈리아(86.5%·한국개발연구원·2023) 한 곳 정도다. 많은 자산에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39.7%(2022년)에 달한다. 통계청 등이 더 깊게 실태를 조사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응답한 고령층 중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답한 이는 57%에 달했다. 이 생활비에는 의료비도 포함돼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65세 이상 고령가구(2인 기준)의 1년 적정 소비 금액은 1625만원이라 추정하기도 했다. 최소 생활비에 가까운 수준인데, 실제 소비는 이보다 200만원 정도 적은 것으로 추산했다.
집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 강한데, 매달 생활비를 더 받겠다고 집을 담보로 한 역모기지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 상품에 가입한 이후에는 집을 활용해 더 자산 가치를 높일 수 없고, 상속도 온전하게 하기 어렵다. 집을 담보로 잡은 시점 이후에 오른 집값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자식에게 상속을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은 세대 간 갈등의 불씨가 된다. 한국은행이 전국의 55~79세 주택보유자 38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24.8~10월)에는 이런 문제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응답자들은 연금을 받는 총액이 집값보다 낮을 확률이 높다(18.2%)는 점, 가입 후 집값이 올라도 연금 수령액에 반영되지 않는다(15.1%)는 점, 자식에게 집을 온전히 상속할 수 없다는 점(15.1%) 등으로 인해 가입을 꺼리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한 후배의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부모님의 이해가 부족해서 일어난 갈등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제도 개선을 통해 갈등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은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난 세 가지 장애 요인을 해결할 경우 최대 34만명 정도의 노인 빈곤층이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단순히 노인 빈곤율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연금 소득 확대는 소비나 저축 여력을 높인다. 이는 경제 전반에 활력을 주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0.5~0.7%까지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각 개인의 삶에 안정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국가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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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집을 저당 잡히는 것은 말이 된다. 설득력을 높이는 것이 정부의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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