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이 한국화(Koreafying)하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카디안의 오웬 라몬트 부사장이 지난해 6월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 제목이다. 미국 시장이 테마주가 판을 치는 한국 시장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하소연은 1년도 안 돼 공포로 바뀌었다. 지난달 그가 다시 올린 글의 제목은 "오징어 게임 주식 시장"(The Squid Game stock market). 미국 시장에서 평범한 한국인들이 벼락부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있고, 지난 몇 년간 미국 증시가 보여준 기이하고 격렬한 주가 변동은 마치 오징어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사건들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학개미들의 공격성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 1분기에만 테슬라 주식 23억달러(약 3조원)어치를 사들이며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던 서학개미들의 마음은 이제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로 향하고 있다. 미국에 상장된 30대 반도체 기업 주가를 3배로 추종하는 SOXL과 나스닥100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TQQQ는 2분기 시작 15일 만에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어치가 팔리며 테슬라를 서학개미 장바구니에서 밀어냈다.
3배 추종이란 말 그대로 주가가 30% 빠지면 내가 들고 있는 ETF는 90% 떨어진다는 얘기다. 미국 증시가 꾸준히 우상향하던 시절에야 단순히 주식을 보유한 것보다 압도적인 수익률을 자랑했지만, 요즘과 같은 변동성 장세에선 계좌가 녹는다. '변동성 끌림'(Vol Drag) 현상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포인트였던 기초지수가 내일 10% 하락해 90포인트가 되고 모레 다시 11.11% 상승해 다시 100포인트가 됐다고 가정해보자. 지수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은 0%다. 그러나 레버리지 3배짜리를 산 사람은 지수가 10% 빠진 2일 차에 70포인트(-30%)로 주저앉는다. 3일 차에 33.33% 반등해도 93포인트까지밖에 못 오르는 셈이다.
보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고배율 레버리지 ETF들은 자산의 대부분이 글로벌 IB들과 맺은 스와프 계약으로 구성돼 있다. 운용사가 기초자산의 3배 수익률을 보장받는 대가로 차입 금리를 지불하는 구조다. IB들은 위험 감수 대가로 가산금리까지 매긴다. 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레버리지 3배 ETF의 연간 비용은 12%로 추정된다. ETF 운용 보수만 비용으로 생각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테슬라 2배 추종 ETF(TSLL)의 서학개미 지분율은 40%에 육박했다. 만약 TSLL이 기업이었다면 사실상 한국인의 자회사나 마찬가지다. 내가 투자하는 상품이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알고 사는 것과 남들이 사니까 따라 사는 것은 천지 차이다. "서학개미, 이제는 분산투자가 필요할 때"라는 한국은행의 경고를 잊지 말자.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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