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개입 없는 자생 수종…유전자원으로 가치 보호”
천혜의 난대식물 보존공간 '진도 여귀산'
능선 상부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등 자생
남방계 난대식물 군락지, 보호가치 높아
산림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지정·관리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자연생태계를 원형에 가깝게 보호·관리할 목적으로 지정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귀산(女貴山)은 남방계 산림유전자원을 보존하는 천혜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재수 산림청 영암국유림관리소 소장은 여귀산의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하 보호구역)으로서의 가치를 이처럼 설명했다.
지난 20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에 위치한 여귀산을 찾았다. 여귀산은 진도읍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에 위치했다. 해발 457m의 이 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능선이 흘러내리듯 이어져 겉보기에는 부드러운 산세를 보인다. 하지만 산 정상을 오르다 보면 겉보기와는 다른 험준한 산세를 마주하게 된다.
보호구역은 여귀산 능선의 상부에 위치했다. 산 아래부터 산 중턱까지는 그나마 일반 차량의 통행이 용이하도록 아스팔트 길이 놓였다. 하지만 산 중턱의 샛길부터는 포장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진다.
정재수 영암국유림관리소 소장이 지난 20일 여귀산 정상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에서 붉가시나무 등 자생식물을 보호·관리하는 목적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산림청 영암국유림관리소
샛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면 일반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바리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리게이트를 경계로 바깥쪽은 여귀산에서 생활하는 임가 주민 등 일반인의 통행이 가능하지만, 안쪽으로는 출입을 허가받은 차량만 통행이 가능했다.
일반인과 차량 통행이 제한된 만큼, 바리게이트 안쪽 임도부터는 야생 숲의 기운이 한껏 짙어졌다. 길가를 벗어난 산중에는 수림이 여느 산보다 빽빽해 흡사 숲이 아닌 정글을 탐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길가의 양옆 가장자리에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차량 바퀴로 다져진 임도 노면까지 잡초가 자랐다면, 이곳에 임도가 있다는 것 자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귀산 중턱에서 상부로 이어지는 길목은 그야말로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천연림에 가까웠다.
울퉁불퉁한 노면의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차량으로 20~30분가량을 이동했을 때 목적지인 보호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호구역은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인위적으로 구분을 지어 놓지는 않았다. 다만 여귀산에서 자연적으로 터를 잡아 형성된 난대식물의 군락지를 하나의 구역으로 엮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설명이다.
굳이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출입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이곳까지 와서 자연을 훼손할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경계선을 안의 보호구역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얼핏 보기에 여느 숲과 다르지 않은 이곳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남방계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난대식물이다.
여귀산 보호구역의 대표 난대식물은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이 꼽힌다. 이들 수종은 남방계 상록 활엽수로, 남쪽 지역에서는 흔하게 마주할 수 있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자생하기 어렵다.
가령 붉가시나무는 추위에 약해 내륙지방에서는 노지 월동이 불가능하고, 양지바른 산기슭과 계곡에서 주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1월 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인 지역에서 생육이 가능해 제주도와 진도 등 남부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붉가시나무라는 이름은 목재의 색깔이 붉은 데서 붙여졌으며, 함평 붉가시나무 군락지는 1962년 천연기념물(제110호)로 지정됐다.
후박나무는 진도를 포함한 남쪽 섬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수종으로, 다 자란 나무의 높이는 20m, 둘레는 6m에 달한다. 웅장한 수형과 반들반들한 단풍처럼 붉게 물든 잎과 새순이 특징으로 꼽힌다. 진도 첨찰산 자락의 후박나무 두 그루는 1968년 지정된 천연기념물(제107호)이다. 전남지역의 전형적 어촌 마을에는 과거 후박나무 노거수 아래에 제당을 짓고, 풍어와 어민의 무사 안녕을 비는 곳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상록 활엽 교목(녹나무과)인 생달나무 역시 진도 여귀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종이다. 생달나무는 주로 제주도, 울릉도, 경남, 전남 등지의 해안가에서 생육한다. 경남 통영 욕지면 우도에 있는 생달나무 세 그루는 1984년 천연기념물(제344호)이 됐다. 통상 나무 지름은 30∼80㎝, 높이는 18m까지 자란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은 여귀산 정상부의 난대식물 군락지를 중심으로 지정됐다. 난대식물은 짙은 녹음으로 주변 나무들과 구별된다. 산 아래에는 임가 주민의 생활터전이 자리를 잡았고, 산 너머에는 진도 앞바다와 도서지역이 위치했다. 사진제공=산림청 영암국유림관리소
원본보기 아이콘보호구역 내 이들 수종은 인위적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전자원으로서 보호가치를 갖는다.
정 소장은 “후박나무와 생달나무 등은 남부 해안가에서 경관개선(가로수) 등의 목적으로 식재될 만큼,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이라면서도 “다만 보호구역 안에서 관리되는 수종의 경우 일체의 유전자 변형(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한 고유의 특성을 온전히 가졌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호구역 안에서의 관리는 보호 수종이 넝쿨 등 다른 식생으로부터 성장을 방해받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하고, 병해충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며 “유전자원으로서 수종 보호는 자연생태계 보전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다”고 덧붙였다.
영암관리소는 현재 진도를 포함해 총 2826㏊의 보호구역을 담당한다. 특히 남부 다도해 해상지역에 분포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의 자연생태계 훼손 방지와 보존·관리, 생태탐방 등을 위한 거점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영암관리소의 몫이다. 전체 보호구역 중 2699㏊(95%)는 도서지역에 분포했다.
도서 보호구역에서는 도서별로 자생하는 난대성 수종이 보호·관리되고 있다. 보길도 ‘황칠나무’, 구도와 매물도 ‘육박나무’, 닭섬 ‘까마귀쪽’, 조도 ‘조도만두나무’, 신도 ‘백서향’, 흑산도 ‘후박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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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소장은 “도서지역의 남방계 난대식물을 보존·관리하는 기관은 영암관리소가 국내에서 유일하다”며 “영암관리소는 기후변화 등 외부 요인으로부터 난대식물을 지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보호구역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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