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문화진흥원, 19일 법성포 문화유산 학술대회 개최
법성문화진흥원은 오는 19일 법성커뮤니티센터에서 ‘법성포 문화유산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첫 날인 오는 19일에 김옥란 가야금 병창 이수자의 특별공연을 시작으로 박종환 전 나주국립박물관장과 이재운 전주대 명예교수 등 국내 저명한 석학들이 모여 법성 조창의 위상과 제월정, 그리고 관아 건축 등을 고찰하는 본행사로 구성된다.
오는 20일에는 법성진성 답사와 조선시대 해상 세곡로인 법성포 해문을 따라 조운 해로 답사를 끝으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
첫날 발표는 박종환 전 나주국립박물관장의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방안’을 시작으로 김덕진 광주교대 교수의 ‘법성진의 독진 승격과 그 방향’, 신웅주 조선대 교수의 ‘법성진 제월정의 복원고찰’, 성대철 전남문화재연구원 건축문화재 연구소장의 ‘영광 법성진 관아건축의 위치와 배치 형태’, 박명희 전남대 교수의 ‘조선시대 한시에 나타난 법성포’, 문광균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의 ‘조선후기 문헌을 통해 보는 법성창의 운영실상’ 순으로 진행되며 각 발표 후 토론이 함께 진행된다.
법성문화진흥원 김경수 원장은 “작년에 많은 학계 인사들과 대학생들이 참석하여 법성포 조창과 진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고, 역사적으로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에 공감했다”며 “이번 학술대회도 법성포의 문화유산에 대한 복원과 활용방안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지역의 미래세대에 그 가치가 온전히 전해 질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아볼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 법성진성
법성진성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205호(220. 11. 27)로 남쪽으로 바다와 접한 구릉의 남사면에 있으며, 부정형 직사각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현재,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 성체는 잘 남아 있으며, 남쪽은 일부 구간이 지난해에 원형 그대로 노출되어 일부나마 성의 위용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성벽에는 성을 쌓기 위해 법성창의 수세 군현에서 동원된 군현의 지명과 쌓은 길이(尺), 그리고 해남현의 경우는 공사시기와 함깨 감독관과 현장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①객사 ②동조정 ③동헌 ④작청 ⑤장청 ⑥문루 ⑦해창 ⑧남고 ⑨12고을 세곡고 ⑩제월정 ⑪군기고 ⑫상동문 ⑬하동문 ⑭남문 ⑮서문 「출전」 법성진지도(1872) 서울대 규장각 소장
■ 제월정(월랑대)
전라도 12개 고을의 세곡 창고 옆에 있던 누각(樓閣)이다. 조선시대 법성면은 정조 때부터 영광군과 분계(分界)되어 106년 동안 법성진 첨사가 독립된 지위에서 고을을 다스렸던 독자 행정 권역이었다.
이에 따라 법성첨사는 고을 수령으로 영광군수와 같이 3정(政)을 행사했고, 객사 아래 동조정에서 영광군을 포함해 전라도 12고을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계량하고 검사해 이곳 제월정 아래에 정박했던 조운선에 실어 서울로 운송했다.
시야가 탁 티어 높은 언덕에서 바다를 굽어볼 수 있어 전경이 그만이었던 이 누각은 호남의 명루(名樓)로도 손꼽혔지만 세곡 선적기간에는 법성첨사가 이 누각에서 선적을 감독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370여 년 전인 효종 7년(1656)에 지은 이 누각은 날아갈듯 한, 추녀 끝하며 고풍스러운 경관이 법성포 전체의 경색을 장악하는 압권이었고, 법성 고을 사람들이 ‘법성포의 백미(白眉)’라 꼽았었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시문이 편액 돼 있었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당대의 명필이었던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9~1845)이 정호(亭號)를 쓴, 이 누각은 1974년 화재로 소실돼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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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이전성 기자 baek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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