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심아진 소설집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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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해 있지만 진하지 않은, 얇디얇은 맛을 내는 저녁 한 끼였다."(‘다복한의원’) 한의원 원장 한용수와 간호조무사 규리가 두 달 만에 ‘밥 한 끼’의 예전 루틴을 회복한 날, 두 사람이 함께한 저녁의 풍경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미묘한 묘사가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의 맛만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은 알아채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지금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와 분위기를 품으면서 이들의 관계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드러내려고 한다. (중략) 드러나는 것과 감추어지는 것 사이의 밀도 높은 줄다리기는 화자 장치의 독특한 활용과 함께 심아진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인데, ‘다복한의원’에서 초점화자 규리의 마음과 감정의 항로를 표면적 진술 너머에서 따라가는 재미는 상당하다. (문학평론가 정홍수)


소설을 읽는 재미가 다만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때론 단어와 문장, 자간과 여백이 직조하는 특유의 활력과 리듬을 발견하는 게 훨씬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작가의 생동하는 어휘 안에서 호쾌하게 웃고, 바보처럼 운다. 어리숙하고 나약하며 매 순간 위선과 위악을 넘나드는 이들을 미워할 수 없는 건, 이 모두를 힘껏 껴안는 작가의 사려 깊고 활기 넘치는 언어 덕분일 것이다. (소설가 김혜진)

정홍수 평론가는 심아진 신간 <신의 한 수>(도서출판 강) 중 소설 ‘다복한의원’을 ‘진하지 않은, 얇디얇은 맛’으로 읽었다. 이 맛은 한 편의 작품에 국한되기보다 소설집 전체에 깔려 있다고 했다. 극단이나 과잉을 통한 극적 강렬화의 유혹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상상력의 창의나 서사의 다채로운 개척, 인간 심리와 감정의 추적에서 정교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평도 덧붙였다. 이렇듯 <신의 한수>는 평범하고 무료할 수도 있었던 읽는이의 일상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장면들은 소설과 함께 희뿌연 안개 속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같은 기억으로 바뀐다. 작가는 성숙한 시선으로 또 절제된 언어로 얇음을 껴안는다. 우리가 흔히 겪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린 하루하루를 이어주며 ‘진하지 않은, 얇디얇은 맛’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신의 한 수>에는 ‘다복한의원‘ 외에도 ’언니’ ‘신의 한 수’ ‘우는 남자’ ‘오렌지 하트’ ‘레슬링’ ‘귀향’ 등 총 7편의 작품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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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심아진은 1999년 중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21세기문학)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숨을 쉬다>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무관심 연습>, 장편소설로 <어쩌면, 진심입니다>가 있다. 2020년 ‘심순’이란 이름으로 동화 <가벼운 인사>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동화집으로는 <비밀의 무게>(창비 좋은어린이책 대상)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이 있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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