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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증, 개츠비도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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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 役 박정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개츠비가 왜 춤을 춰야 해? 개츠비가 파티 주인인데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게 개츠비라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거야?"


이머시브(관객 참여형) 공연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를 연기하는 배우 박정복(38ㆍ사진)이 연습 중 에이미 번즈 워커 협력연출에게 던진 질문 가운데 하나다. '위대한 개츠비'는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고 배우가 극 중 관객과 즉흥 대화도 나누는 독특한 형태의 연극이다.

박정복은 그 독특한 매력에 끌려 오디션에 참여했고 주인공 역을 따냈다.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이 문제였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연기 방식을 버리고 싶었는데 계속 묻어났다"며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기존에 쓰지 않던 방식의 연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원작은 미국 소설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가 1925년 발간한 동명 소설이다. 소설은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진 당시 미국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사랑하는 연인 데이지와 만나기 위해 날마다 밤이면 자기 저택에서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인물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공연 장면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위대한 개츠비'의 공연 장면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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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의 무대는 개츠비가 주최하는 호화로운 파티장이다. 관객들이 배우의 안내에 따라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화려한 조명 아래 재즈가 흐르는 파티장이 펼쳐진다. 개츠비와 그의 친구들이 한 명씩 등장하고 이들은 관객들에게 간단한 춤을 가르쳐준다. 곧 배우와 관객이 뒤섞여 군무를 춘다.


소설 속 개츠비는 춤추지 않지만 연극 속 개츠비는 관객과 함께 춤추며 분위기를 띄운다. 어색해하는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위대한 개츠비가 어떤 공연인지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파티에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분위기를 띄우고 '관객들에게 마음을 열고 즐겨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박정복은 치밀한 이야기를 선호한다. "전후 사건을 감안해 모든 텍스트가 완벽하게 이성적인 논리로 정리되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극 중 텍스트가 지닌 논리를 촘촘하게 만들어낸다. 순간 즉흥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연극 '레드' '시련' '보도지침' 등에 출연해 묵직한 서사를 표현해야 하는 역할들을 연기했다. 레드에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조수 켄을 연기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아서 밀러가 매카시즘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1952년에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시련'에서는 양심을 지키려는 목사 '존 헤일'을, 1986년 전두환 정권 때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의 군사 정권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건을 연극으로 만든 '보도지침'에서는 주인공 김주혁을 연기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연극들과 결이 다르다. 극 중 관객이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하거나 행동을 보일 경우 이야기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우의 즉흥적인 애드립이 중요하다.


박정복이 낯선 형식의 '위대한 개츠비'에 출연한 것은 새로운 극과 연기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원래 한 작품에 집중하는 편인데 지난해에는 겹치기 출연도 감수하면서 의도적으로 많은 작품을 했다. 연말에는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비슷한 형식의 공연을 계속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마다 주제는 다르고 캐릭터도 변하지만 형식이 같으니까 지치는 느낌이었다. 또 내가 열심히 즐겁게 행복하게 무대에 서는 것은 맞는데 무대를 즐기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연극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촘촘하게 구축하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내가 너무 관객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 연기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연습 때는 옥죄는 느낌을 가져가되 무대에서는 좀 즐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의 박정복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의 박정복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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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있을 때 우연히 본 위대한 개츠비의 오디션 영상은 새로운 감흥을 줬다. "극의 형식이 완전히 다르니까 궁금증이 생겼다. 이머시브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논문도 찾아보고 연기를 처음 배울 때처럼 열정이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박정복은 위대한 개츠비를 연기하는 느낌이 신선하다고 했다. "이전과 다른 형식의 작품을 하면서 얻는게 무척 많다. 특히 여유를 배운다. 마당극처럼 관객이 둘러앉아 극을 보기도 하고,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일대일로 연기를 하기도 한다. 매 씬마다 연기의 질감이 달라진다. 다른 연극에서는 느끼지 못한 성취감도 맛본다."


이른바 무대 연기에 집중해왔던 그가 다시 영상 연기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됐다. '위대한 개츠비' 배우들은 관객들 속에서 연기한다. 관객은 가까이에서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열정적인 배우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줄기가 생생히 보이고 감정이 격해져 거칠어진 호흡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집중력이 더 필요하다.


박정복은 "관객들의 눈빛이 정말 내 얘기를 들어주는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만약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연기를 하지 않으면 관객의 집중력이 깨진다는 것도 느껴진다. 그래서 영상 연기를 할 때처럼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순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를 전공했다. "무대 연기를 할 때 나의 장점이 더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에서 하는 섬세한 연기가 더해진다면 내가 뭔가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도 생긴다. 연극과 영상 중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연극 쪽이긴 하지만 이제는 고민을 좀 해보려고 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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