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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을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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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노래한 영화들…'봄날은 간다'부터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까지 여덟가지 색깔의 봄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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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과 가펑클은 '4월이 오면(April Come She Will)'에서 봄을 노래한다. "봄비로 냇물이 불어나는 4월이 오면 그녀도 오겠지." 꽃을 부르고, 사랑도 부르는 계절. 많은 영화들이 은은한 꽃향기에 기대어 포근한 기운을 전한다. 그것은 감미로운 설렘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는 늑골 깊숙이 숨은 회한과 연민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도 봄이 찾아온다. 봄꽃을 노래하는 영화들의 인상적인 순간을 다시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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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2001년)=상우(유지태)의 집 대문 앞에 개나리가 피었다. 상우는 마당에 심은 꽃에 물을 준다. 은수(이영애)와 사랑에 빠져서 싱글벙글한다. 마루에 앉아 지켜보던 할머니(백성희)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가는 봄과 세월의 아쉬움. 사랑도 다르지 않다. 상우는 은수와 헤어지고 봄날에 강릉에서 재회한다. 벚꽃이 만개했다. "잘 지내지?" "어. 하나도 안 변했네." 과연 그럴까. 벚꽃은 알고 있다. 상우의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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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오면(2004년)=현우(최민식)는 낡은 아파트 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우고 연희(김호정)의 모습을 지켜본다. 앞 유리에 벚꽃 잎이 떨어진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봄기운이다. 현우는 씨익 웃는다. 강원도 탄광촌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관악부 지도교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봄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법을 깨달았다. 여전한 사랑의 새싹이 가슴에서 움튼다. 그는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으며 연희에게 전화한다. "여보세요? 야, 너는 전화를 받았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대답을." "왜 걸었어?" "왜 걸기는. 뭐하냐. 바빠? 야, 있다가 오빠가 술 한 잔 살 테니까 나올래?" "술?" "어." "술은 갑자기 왜?" "뭐, 갑자기, 뭐, 술 마실 수도 있지. 야, 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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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민란의 시대(2014년)="더러운 땅에 하얀 연꽃이 피어오르는 것은 신의 뜻인가, 아니면 연꽃의 의지인가." 조윤(강동원)은 운명의 역류를 꿈꾼다. 쌍칼 도치(하정우)가 이끄는 의적들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여동생의 아들을 품에 안고. 벚꽃이 흩날린다. 의적들에게는 승리를 자축하는 꽃가루, 조윤에게는 낙화하는 자기 자신일 거다. "너희들 중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라. 내가 그 자의 칼이라면 받겠다." 조윤은 오른손으로 매섭게 장검을 휘두른다. 벚꽃 잎처럼 유려하게 도치의 검을 피하며 운명을 거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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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이야기(1998년)=니레노 우즈키(마츠 다카코)에게 봄은 희망이다. 도쿄에 있는 무사시노대학교에 진학했다. 짝사랑하는 선배 야마자키(다나베 세이치)를 보기 위해서. 사쿠라가오카 2번지로 이사하는 날, 거리는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벚꽃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꽃잎이 눈발처럼 날린다. 설렘으로 가득한 한 폭의 수채화다. 이사를 마친 우즈키는 티셔츠 속으로 들어간 잎들을 털어낸다. 가슴 속에 묻어둔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운명적인 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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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년)=주인공의 이름부터 (야마우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 벚꽃이다. 귀여운 미소와 활기찬 성격으로 반에서 인기가 많다. 그녀는 벚꽃이 만발한 등교 길에서 시가 하루키(기타무라 다쿠미)에게 반갑다며 손을 흔든다. 그녀를 잘 모르는 시가는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한다. 설레는 감정을 애써 숨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벚꽃이 피었을 때 야마우치는 이 세상에 없다. 시가는 벚꽃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그녀가 남긴 편지를 추억한다. "난 강하지 못해서 친구나 가족을 내 슬픔에 말려들게 해. 그런데 너는 언제나 너 자신이었어. 그 용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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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년)=벚꽃이 만개한 봄날,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는 도라야키를 굽는다. 도쿠에(키키 키린)가 찾아와 말을 건넨다. "아르바이트 말인데, 정말 나이제한은 없나요?" "네" "나도 되려나.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연세가 어찌 되세요." "만으로 일흔여섯." "페이가 적어요. 시간당 600엔." "300엔이면 충분해." "안 될 것 같네요. 허리 상하실 겁니다. 보기보다 많이 힘들어요." 도쿠에는 도라야키 가게를 다시 찾는다. 직접 만든 팥소를 건네 실력을 입증하고, 벚꽃 잎이 다 질 무렵 일을 시작한다. 그녀가 도라야키를 만드는 동안 벚꽃은 계속 피고 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도쿠에는 왕벚나무가 된다. 나병환자는 무덤을 만들 수 없어서 죽고 나면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우리 사장님, 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지.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내성적이고 폐쇄적이던 센타로는 달라진다. 벚꽃 아래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도라야키 왔어요. 도라야키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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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년)=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찾은 일본 도쿄의 한 공원. 상실감에 젖은 루디(엘마 베퍼)의 눈에 유(이리즈키 아야)의 모습이 들어온다. 벚나무 아래에서 정제된 몸짓으로 부토(일본의 현대공연예술)를 춘다. 루디는 용기를 내어 묻는다. "부토 무용서?" "네." "물어볼 게 있는데." 유는 벚꽃이 떨어진 땅에 비친 그림자를 가리키며 부토의 다양한 감정 표현법을 설명한다. "부토는 그림자의 춤이에요. 내가 아니라 그림자가 추는 거예요. 보세요. 할아버지 그림자가 춤춰요. 난 그림자가 누군지 몰라요. 여보세요? 누구세요? 대답이 없네요. 누구든 부토를 출 수 있어요." 루디는 부토를 해보라는 유의 손길을 뿌리친다. 물결처럼 흔들리는 그림자에서 아내가 떠올랐을 게다. 생전에 벚꽃을 좋아했다. 유의 계속된 권유에 루디는 겨우 용기를 낸다. "느껴보세요. 기억과 추억이요. 바람을 느껴요. 그리고 꽃을 봐요. 만발한 꽃들. 그 꽃들을 품안에 안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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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2015년)=이치코(하시모토 아이)는 봄기운이 완연한 언덕에 올라 머위를 캔다. 머위된장을 만들어 키코(마츠오카 마유)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산에는 진달래, 개나리, 민들레 등 울긋불긋한 봄꽃이 만발했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일하는 계절. 이치코는 땅을 일구고 쇠뜨기를 심는다. 여유롭게 앉아 지켜보던 고양이는 따분한지 뒷발로 목덜미를 긁는다. 이치코는 풀을 뜯기에 여념이 없다. 산달래를 캐고 파종이 늦어서 속이 안 찬 배추의 꽃봉오리를 딴다. 송어와 함께 볶아 파스타를 요리한다. "있는 거 다 넣었는데 어때?" "달래의 쌉쌀한 맛이 좋아. 스파게티 대신에 감자를 넣으면 반찬이 되겠어." 엄마와 함께 맞았던 봄도 풍요로웠다. 고사리는 토실토실 살이 올랐고, 대밭에는 죽순이 돋아났다. 엄마는 어린 이치코 앞에서 배추를 심으며 조언했다. "배추흰나비는 해충이야." 그녀는 지금도 속으로 되뇌며 학습한다. "배추흰나비는 죽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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