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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114년 치욕을 품은 '금단의 땅'…용산기지, 무더기 철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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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용산기지 버스투어 '벚꽃 길 투어' 참가

111년 전 지어진 일본식 건물 곳곳에 남아

미군 평택 이전 올해 7월 완료…용산공원 조성 본격화


국토부 용역 결과 975개 시설물 중 81개 존치, 53개 보류

[르포]114년 치욕을 품은 '금단의 땅'…용산기지, 무더기 철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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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40여년 전 보광동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이 담벼락 안이 어찌나 궁금하던지요. 실제로 보니까 정말 넓네요."


서울 용산기지 버스투어에 참가한 최권(58)씨는 9일 오후 미군기지내 둔지산 정상에서 보광동 일대를 내려다보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첫 선을 보인 용산기지 버스투어에 신청,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자 회사에 연차를 내고 부인과 함께 이 곳을 찾았다. 최씨는 "어릴 때부터 꼭 와보고 싶었는데 둘러보니까 좋다"고 말했다.


용산미군기지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서울 용산구 일대 992만㎡(300만평) 규모를 군용수용지로 강탈하면서 아픔의 역사가 시작됐다. 경술국치(1910년) 직전인 1908년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완공된 이후 해방 전까지 일본군이 주둔하며 대륙침략의 거점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잠시 귀속되기도 했지만 6ㆍ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하다 휴전하면서 반세기 넘게 미군기지로 사용됐다. 지난해 11월 첫 공개되기 직전까지 무려 114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실제 이날 둘러본 용산기지 안에는 100년이 훌쩍 넘은 빨간 벽돌의 일본식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본군 감옥인 위수 감옥은 일본군을 상징하는 별모양이 새겨진 환풍기를 비롯해 미8군사령부 청사, 옛 일본군 병기지창, 일본군 출정식이 이뤄진 만초천 아치형 다리위 문설주까지 오롯이 쓰라린 과거를 간직하고 있었다. 김천수 용산공원갤러리 역사문화실장은 "일본군이 건물을 완공한 1908년 이후 111년 전 건물들은 불편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소중한 역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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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의도보다 다소 작은 264만㎡(80만평) 규모인 용산기지는 한미연합군사령부를 비롯해 미군의 사무실, 미군 가족들이 숙소로 사용한 단층 주택들, 초중고교는 물론 병원까지 갖추고 있다. 총 21개 게이트로 둘러쌓인 높은 담장을 제외하면 단층 건물 위주의 미국의 한적한 도시를 옮겨 놓은 모습이다.


미군은 2017년 7월 8군 사령부의 평택 이전을 시작으로, 올 7월까지 평택으로 모두 이전할 계획이다. 용산 미군기지 내 모든 시설의 이전이 완료되면 부지반환 협상, 환경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 기지 반환이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용산 생태공원 조성 사업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2011년 5월 용산미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용산공원정비구역'으로 지정하고, 이듬해 국제공모를 통해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웨스트8과 이로재 컨소시엄)을 1등작으로 선정했다. 1등작은 네델란드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와 한국 건축가 승효상씨의 공동 설계한 작품으로, 자연과 역사,문화를 치유하는 공원이 콘셉트다. 남산∼용산공원∼한강을 잇는 생태축을 구축하고, 공원 내부와 주변 도시를 연계한 다리(오작교)를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2016년 4월 발표한 '용산공원 개발 시설과 프로그램 선정안'에는 7개 정부부처 주관으로 박물관, 공연장, 광장 등 8개 시설물을 들이는 내용이 담기면서 부처간 나눠먹기를 위한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국토부는 이같은 계획을 백지화하고 생태공원으로 개발키로 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국제공모 1등작인 웨스트8과 이로재에 공원조성기본계획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현재 975개 시설물 가운데 81개동은 존치, 53개동은 보류, 나머지는 철거 대상으로 조사됐다. 국토부는 이같은 용역결과를 토대로 미군의 평택 이전이 완료된 올해 하반기부터 용산공원 조성을 위한 본격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는 계획이다. 90% 가까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용역 결과는 전면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상반된 내용으로, 공론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다.


권혁진 국토부 도시정책관은 "이 결과는 연구용역 결과일 뿐 정부의 판단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용산기지 버스투어는 기지내 벚꽃이 만개한 만큼 '벚꽃 길 투어'로 명명, 한 차례 추가된 일정이다. 봄비를 잔뜩 머금은 하늘이 잔뜩 찌푸린 탓인지 옛 일본군 병기지창 앞으로 만개한 벚꽃 길은 길 건너 즐비한 고층건물과 어우러져 이질적이다. 김 실장은 "일본해군이 주둔했던 진해처럼 용산기지도 벚꽃이 많이 심어졌다"고 설명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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