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위해 탐색한 곳의 체류를 늘리고 목적을 어학연수로 변경했었다. 애써 가라앉히던 생존강박이 잠시 수면 위로 나왔던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선택한 어학원에는 나와는 이십 년 가까운 터울의 타국과 한국 청년들로 그득했다.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누나~”. 세상에 공짜 없다를 몸소 마음소 겪어온 나로선 그들의 깍듯한 무상(無償) 예의에 나보다 힘든 이의 것을얻어쓰는 듯 겸연쩍었다. 빚이 이래저래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당시 나름의 빚 갚음 방식은 음식을 해서 나눠 먹는 것이었다. 아직은 요리가 익숙치 않을 나이에 타국에서 스스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는 게 쉬울 리가 있나. 내 것을 만들 때 양을 더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어린 친구들과 나눠먹곤 했다. 기회를 만들어 여럿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타국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지만, 한국 친구들이 우선이었다.
친한 녀석들의 배고프단 말에 흔들려, 혼자 몸보신할요량으로 한국서 가져간 백숙용 약재를 죄 털어넣어, 삼계탕 파티를 연 적이 있다. 다음날, 어학원에서 마주친 H가 다짜고짜 서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아 미안, 다음엔 초대할께.” 덜컥 미안했다가, 이내 볼멘 심상이 생겨났다. ‘어떻게 수십 명을 다 불러?’
“다음엔 초대할께”란 의례적인 말은 ‘닭도리탕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분해 마지막까지 은근 압박이었다. 유례 없이 푹푹 찌던 긴 여름은 그곳도 마찬가지였고 에어컨도 없이 오래 불을 쓰고 파티를 한다는 게 도저히 말이 안 돼 냉국수나 만들어 몇몇과 식사만 몇 번 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일주일 후, 페이스북에 연결된 친구를 통해 H의 포스팅이 떠올랐다. 그가 아닌 그의 누나가 올린 것이었다. ‘2016년 9월 00일. 너무 예쁘고 의젓하고 착한 OO이가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횡경막께가 잠시 일렁였다.
‘아까워라…’.무엇이 아까운지 분명치 않은 채 머리와 입안을 맴 돌았다 .H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애통함이 담긴 친구들의 애도글 아래, 불과 얼마 전 그가 포스팅한, 청년답게 개구진 글들과 여행지의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여전히 생생한 눈빛으로 화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움을 영사할 기억 하나 없고 비통할 수 있는 친분도 관계도 아닌, 그저 ‘아는 청년’의 비보였다.
손질한 닭과 양념을 냄비에 넣어 불 위에 올리고 불 조절을 위해 그 앞에 섰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유리 너머에 까닭 흐린 ‘아까움’이 보글거렸다.
김소애, 한량과 낭인 사이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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