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중 칼바람] 기업, 美·中 넘기도 힘든데…국내서도 발목
'불명예 처벌' 암흑기, 홀대받는 대기업…트럼프 보호무역·중국發 무역보복·국내 반기업 정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가정용 세탁기의 미국 수출 과정에서 각각 52.5%, 32.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게 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0일(현지시간) 삼성과 LG가 중국에서 생산한 가정용 세탁기가 덤핑 판매돼 미국의 월풀 등 자국 업체가 피해를 봤다면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월풀 제프 페티그 회장은 "미국 제조업체, 특히 오하이오주 클라이드에 있는 우리 공장 직원 3000여명의 만족스러운 승리"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공언했던 보호무역주의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변수에 중국발 무역보복, 한국 내부의 반기업 정서까지 맞물리면서 국내 기업은 '3중 칼바람'에 직면한 상태다.
◆트럼프발 우려가 현실로=이러한 상황은 외국의 글로벌 기업이 처한 상황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등 글로벌 경영인들은 트럼프 당선자와의 면담을 성사시키면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실속행보에 돌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자가 보호무역주의 엄포를 놓는 것은 결국 미국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메시지"라면서 "마윈 회장이 투자를 약속한 것도 거래에 능한 트럼프 당선자의 특성을 파악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스킨십 경영을 강화하며 불확실성 시대에 대처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최순실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검 소환 일정이 임박한 관계로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해외 일정을 뒤로 미룬 상태다.
◆발묶인 재계=다보스포럼 단골 멤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출국금지 명단에 포함되면서 참석이 어렵게 됐다. 대외 불확실성 고조로 대기업 총수의 해외 비즈니스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국내 리스크에 발이 묶이면서 글로벌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 시대가 국내 기업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다면 중국발(發) 무역보복 움직임은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이 한국산 일부 화장품 수입을 불허하면서 공포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이 수입을 불허한 제품 28개 중 19개가 한국산 제품이었다.
중국이 '한반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불만을 무역 보복 형태로 표출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기업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도 중국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美中 나는데 韓은 보이지 않아=기업들은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미국과 중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는 최순실 정국의 소용돌이에 빠져 컨트롤 타워 기능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통령 선거 흐름과 맞물려 재벌 개혁의 목소리가 탄력을 받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이 사실상 적폐의 대상으로 취급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정경유착 해소를 위한 투명 경영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여론의 흐름에 치우친 감정적인 대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고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는 선택이 아니라 기업을 문제 집단으로 낙인을 찍는 상황에서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몰고 가는 흐름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보복 움직임도 걱정되지만 기업을 홀대하는 국내의 환경이 더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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