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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원고 읽을 때, 5초이상 못듣겠더라" 말한 강원국

최종수정 2016.11.07 15:37 기사입력 2016.11.0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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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연설비서관이 낸 '대통령의 글쓰기'…출간 2년여만에 새삼 베스트셀러로

대통령의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강원국(55)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TV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면 리모콘을 찾기 바빴다. 차마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5초 이상 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 짧은 시간에 화면을 통해 본 연설마저도 '자기 생각이 아니구나, 누가 써준 대로만 읽는구나'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원고를 읽지 않고 이야기할 때는 번역기를 돌려야 할 정도의 수준으로 보여서 의아했다"고 했다. 그는 4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이번 사태가 연설문에서 발단이 되지 않았나. 자기 생각이 없거나,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리더는 재앙이며,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든 국민이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강 씨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합쳐 8년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고 다듬었다.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2014년 2월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이 책은 서점가에서 다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5위 안에 진입했다. 소감을 묻자 "이걸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2014년 출간 당시에는 임기 초반이었던 박 대통령이 '불통'으로 문제가 됐던 시기다. 그래서 독자들이 그나마 소통을 하고자 노력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책을 찾았다"며 "이제는 단순히 추억이나 회상을 넘어서 리더의 자질을 따지거나 글쓰기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전직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서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대통령은 말로 국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걸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줬다면, 그 사람이 국정운영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강 씨는 "적어도 자기 생각이 없으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 협의하고, 보고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그 생각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오히려 외부의 힘을 빌려 해결했다. 이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인식하지 조차 못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기에 급급한 청와대 참모들도 이번 사태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한 마디로 "생각이 없는 대통령과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참모들"이 만나 이런 대형사고가 터졌다는 분석이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국회의원이나 사회 리더들 중에도 자기 연설문을 못 쓰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항상 '말만 앞선다'고 폄훼하는 문화가 있다. 남의 생각을 많이 듣고 읽고 암기한 사람이 공부 잘해서 사회에 나가 출세하는 사회였다. 질문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제2, 제3의 최순실이 계속 나온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안된다. '창조경제'를 외치는 대통령이 자기 것이 하나도 없으면 되겠나."

지난 달 26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연설문 내용을 수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좌진 두 명이 양옆에 있지만 몇 번이고 자신이 직접 연설문을 꼼꼼하게 가다듬는 장면은 현재의 사태와 맞물리면서 화제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달변가이면서도 탁월한 대중 연설가로 유명하다. 강 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전하고 싶은 핵심 한 줄을 찾았다. 청중들의 마음에 남을 그 한 줄을 강조한 다음, 거기에 맞는 사례와 근거를 준비해 연설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핵심 메시지가 편집되고, 왜곡될 때도 많았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항상 생방송으로, 칼질 안 당하고, 대중들에게 직접 말 할 기회를 아쉬워했다"고 했다. 강 씨가 노 전 대통령을 모실 당시에는 여전히 '침묵이 금'이자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말과 글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기존 정권들이 국민들이 말 많은 걸 싫어했다. 귀찮고 시끄러우니까 기본적으로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도자들 역시 국민들을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없는 정치'였다. 하지만 말이 없다는 것은 생각이 없다는 거다. 우리 사회의 말하기 수준이 더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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