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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 '사실보도로의 퇴행'을 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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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편집위원

이명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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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가 굳어지는 듯하다. 거센 돌풍을 일으켰던 ‘트럼프 현상’은 꺾이는 양상이 뚜렷하다. 내달 투표결과가 어찌 될지 아직 단정할 순 없지만 미국인은 물론 세계 사람들이 ‘설마’ 했던 트럼프의 당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막말에다 여성혐오 등 상식 이하의 행태를 보여 온 트럼프의 패배가 유력해지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하강세에 안도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 속 한 켠에는 도대체 트럼프 같은 인물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여전하다.

트럼프의 부상,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미디어가 특히 큰 ‘기여’를 했다는 건 분명하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발언이라도, 아니 문제 많은 발언이면 더 앞다퉈 중계방송한 미국 언론의 보도가 트럼프를 띄우고 지탱해줬다. 그리고 그 같은 ‘중계방송’에는 미국 언론이 떠받드는 ‘사실 보도’주의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은 신성한 것’이며 ‘사실이 스스로 말하고 사실끼리 경쟁할 것’이라는 신조다. 이는 사실에 인간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으며 공정하다는 믿음과 결부돼 있다. 트럼프를 키워준 ‘인용 저널리즘’은 사실보도주의의 주요한 특징이다. 중요한 누군가가 말하면 일단 인용 보도하고 보는 태도가 ‘객관주의 저널리즘’으로 포장돼 미국 언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온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의 신성성’이라는 신화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무너져 왔다. 사실이 스스로 말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사실은 인간에 의해 선택되고 그 선택에 의해 발언권을 얻는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 언론학자인 미쳴 스티븐스 뉴욕대 교수가 ‘비욘드 뉴스(Beyond News)’란 책에서 현대의 저널리즘의 위기의 큰 원인이 바로 이 같은 ‘사실에 갇힌’ 보도태도라고 비판하는 것도 사실보도주의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인터넷 등으로 위기에 처한 전통 저널리즘에는 ‘사실 너머’에 미래가 있다면서 이를 ‘지혜의 저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사실’에서 ‘지혜’로의 전환. 결코 미국에 못지않게 인터넷의 위협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의 언론도 주목해야 할 방향 제시다. 그러나, 이는 지금 우리에겐 매우 공허한 얘기로 비친다. 지금 우리는 ‘사실’보도 너머가 아닌 다시 ‘사실’보도로 돌아가야 할 상황인 듯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고 그 소식을 궁금해하는 일들을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재단을 둘러싼 불가해한 일들, 그 끝이 어디일지 매일 같이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오는 몇몇 의문의 인물들의 얘기,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런 '사실'들이 어찌된 일인지 많은 방송과 신문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보도하더라도 마지못한 듯이, 다른 소식들 속에 숨듯 언급될 뿐이다. 애초에 제기된 의혹에 대한 얘기는 없이 그 의혹에 대한 해명은 상세히 보도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

‘지혜’니, ‘사실을 넘어선 보도니,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닌 듯하다. 다시금 사실은 신성하다는 믿음으로 ‘사실에 갇히는’ 예전 시절로 돌아가야 할 듯하다. 그게 지혜에서 사실로의 ‘퇴행’이라도 좋다. 그러나 그게 어디 퇴행인가. ‘정상화’가 아닌가. 사실을 넘어서라는 게 사실을 무시하라는 게 아닌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 국정감사가 사실상 지난주에 끝났다. 이제 언론이 더 많은 ‘사실’을 캐낼 때다.
이명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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