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잡겠네…창고 된 비상구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태풍이나 지진 등 대형 재난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수많은 인명ㆍ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급 상황 시 유일한 탈출 통로인 건물 비상구가 사실상 '창고' 역할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대형 재난 상황 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건물 비상구에 적치물을 쌓아뒀다가 적발된 건수는 2014년 238건에서 2015년 250건, 올해 9월까지 313건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현행 소방시설법에서는 비상구와 같은 피난시설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놨다. 서울시 역시 이 같은 행위가 적발되면 1차 과태료 50만원 등 최대 2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도심 건물에서는 비상구를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9일 중구 명동에 있는 한 5층짜리 건물은 4층으로 향하는 비상구에 성인 한명이 지나가기도 힘들만큼 많은 재료 상자들을 쌓아두고 있었다. 특히 이 곳 5층에는 식사시간 때면 수십명의 손님들로 가득 차는 식당이 있기 때문에 화재나 지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출 경우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됐다.
많은 가구가 밀집해서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자전거나 유모차, 퀵보드 등을 비상구에 놔두는 가구가 많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모씨는 "이사 올 때부터 복도와 비상구에 자전거와 짐들이 쌓여 있었지만 주민간 사이가 나빠질까봐 참고 있다"며 "경비실에서 가끔 안전을 위해 비상구 짐을 치워달라는 방송을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짐들이 쌓인다"고 했다.
이에 서울시는 내년부터 비상구에 물건이 쌓여있는 것을 신고하면 포상금 5만원을 지급하는 '비상구 신고 포상금'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근린 생활시설이나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규모 판매시설과 숙박시설 등의 비상구가 대상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2010년 7월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했었지만 '비파라치(비상구+파파라치)' 등 전문 신고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시행 2년 만에 폐지한 바 있다. 당시 서울시가 2년 동안 접수한 신고는 총 1만1387건에 달하고 지급한 포상금도 3억원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이후 비상구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자 '비파라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시 4년 만에 제도를 부활시킨 셈이다.
다만 부활한 비상구 포상금 신고 제도에는 아파트 등 주거시설은 제외됐다. 2010년 당시 포상금을 노린 비파라치들이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과도하게 신고를 하는 탓에 서울 아파트 주민들에게 '비파라치 경고령'이 내려질 만큼 혼란을 야기한 적이 있어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아파트 비상구도 신고 포상 제도에서만 제외될 뿐 불법이 적발되면 똑같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며 "시에서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건물 비상구 검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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