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 1793년 장 폴 마라의 죽음과 샤를로트 코르데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은 남자. 늘어뜨린 오른손엔 펜을, 왼손에는 편지를 들고 있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목욕을 하다 불현듯 맞닥뜨린 죽음에도 남자의 얼굴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과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목숨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순교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얘기다.
223년 전인 1793년 7월 13일,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장 폴 마라는 다비드가 그린 대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숨졌다. 당시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마라의 죽음은 오랜 시간 다비드가 그린 이 그림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이 그림만으로는 마라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마라가 욕조에서 젊은 여성인 코르데를 맞은 연유는 이렇다. 그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물에 몸을 담그지 않고서는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코르데는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마라가 보호해야 한다는 메모를 전했고 민중의 벗을 자처하는 마라는 코르데를 방에 들였다. 마라를 만난 코르데는 품에서 칼을 꺼내 가슴을 찔렀고 그렇게 마라는 욕조에서 죽음을 맞았다. 현장에서 체포된 코르데는 단독 범행을 주장하다 나흘 뒤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자코뱅당 지지자였던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보다 극적으로 연출했다. 피부병에 시달렸다는 그의 몸은 말끔하고 잘 생기지 않았다고 알려진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진중권이 쓴 '춤추는 죽음'에 따르면 다비드는 마라가 살해당할 때 없었던 혁명공채와 이 공채를 조국을 수호하다 죽은 병사의 유족에게 전해달라는 편지를 그려 넣었다. 왼손에 쥐고 있는 코르데의 메모에서 마라의 엄지손가락은 '자비(bienveillance)'라는 단어를 짚고 있다. 실제 코르데가 전한 메모에는 없는 단어라고 한다. 마라가 불행한 코르데에게 자비를 베풀다 죽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비드가 미화한 마라의 죽음은 다른 그림들에 의해 부연된다. 장 자크 오에르가 그린 마라의 죽음은 다비드의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코르데를 중앙에 배치했다. 마라를 찌른 칼을 오른손에 든 아름다운 코르데의 표정은 의연하고 욕조에서 죽은 마라의 눈은 생기 없이 허망하기만 하다. 장 자크 오에르는 코르데가 처형되기 전 그녀의 초상화도 그렸다. 폴 자크 에메 보드리의 작품에서도 코르데는 확신에 찬 눈빛을 하고 있다. 칼에 찔린 마라의 왼손은 고통에 욕조를 부여잡고 있다. 이 그림들에서는 마라의 공포정치를 끝낸 코르데가 주인공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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